새 책을 읽기 전 설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멋져서,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책이어서, 홍보 문구가 내 코드와 딱 맞아서... 등등
이 책을 앞에 두고 설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여울 작가의 문장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였다. 그녀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내용이 반듯하면서 더불어 '참 예쁘게도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내 마음까지 반듯하고 고와질 것만 같은 문장들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떠났던 10년의 여행과 글쓰기'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이었다. 지난 해 3월 한달간, 책모임 멤버들과 다녀왔던 여행이 바로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나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내 여행의 기억들을 새롭게 추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같은 도시, 같은 장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나와 어떻게, 얼마나 다를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은 무엇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닌가. 알면 알수록,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볼수록 훌륭한 화가로서 뿐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올바르고 멋지게 꾸려간 한 인간의 면모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는 '고흐'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책읽기를 마친 지금, 위에서 말한 세가지 기대감은 모두 충족되었다.
첫 프롤로그부터 본문을 지나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고흐 사랑이 철철 넘쳐 읽는 이의 가슴까지도 식지않고 전달될 정도이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그래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조금쯤 부끄러울 수도 있는 고흐를 작가는 온몸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헤세 사랑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고흐와 헤세 중 누구를 더 사랑하시는 건가요?'라고 한번쯤 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본문에서는 작가가 처음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고흐를 만나 울컥했던 첫사랑의 순간부터, 이후 고흐 삶과 그림하고 조금만 관련이 있던 곳이라면 열심히 찾아다니고 그림을 보러 다녔던 이야기들이 쓰여있다. 글과 관련된 그림자료와 곳곳의 사진들도 충분히 실려있다. 미처 가보지 못한 곳들을 새롭게 리스트업하면서, 가봤던 곳들을 다시 떠올려 가면서, 작가의 글을 읽는 시간은 빠르고 즐겁게 지나갔다.
그리고 읽는 내내 미술 평론과들과는 조금 다른, 그림에 대한 감상과 접근법이 참 좋았다. 어쩌면 그 어느 미술 평론가보다 더 그림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는 듯한 해석들이 좋았다. "고흐의 별은 평면적이지 않아 빛나는 암석같았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지난 여행 중 들렀던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 본 고흐의 별그림들이 새삼 떠올랐다.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는 몰랐던 그 질감과 느낌에 깜짝 놀랐던 기억, 동행들끼리 '이러니 늘 물감이 모자랐던 거지'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 그것은 정말 '빛나는 암석' 같았다. 그러고보니 천문학자의 시각으로 봐도 모든 별은 '빛나는 암석'일 터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과 색깔들이 화가의 눈을 통해 어떻게 우리앞에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고, 감상의 대상이 되는지... 나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매번 배운다. 나도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특별히 고흐와 같은 마음으로 대상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자연이든, 그 대상에 진심으로 다가서는 태도, 그 대상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태도를 나는 고흐에게서 배우고 싶다.
고흐의 힘겨웠던 생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자.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눈물겹지 않은 삶이 있을까? 그것이 고흐와 같은 삶이라면 계속 들여다 보는 일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양동이의 눈물을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시 유럽까지 고흐의 못다본 그림들을 보러 갈 수 있을까, 미처 들르지 못했던 장소들을 가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작품 <도비니의 정원>이 있다는 히로시마 미술관 정도라면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고흐라면 먼 길도 기꺼이 가줄만한 동행을 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