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을 한 마디로 하자면?
제목처럼, 싱겁다. 밋밋하다. 그래도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기성 작가인만큼 안정적인 문체와 구성은 흠잡을 데 없다.
그런데 문체가 내용의 무게를 받쳐주지 못한다. 너무 스피디하게 읽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빨리 읽히니까 좋은 게 아니냐고? 천만에. 장편소설이 빠르게 읽힌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음미할 행간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소재는 더없이 멋진데 말이다. 도시 난민을 그린다니......진중한 문체로
좀 더 묵직하게 밀고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상하게 읽으면 내용은 무거운데, 가벼운 느낌이 드는 소설들이 있다.
최근 읽은 장편들이 그랬다. <살고 싶다>, <보헤미안 랩소디>.
두 작품 다 형편없는 문체로 써진 작품이라, 문체가 내용을 담보하지 못했다.
그냥 이야기가 된다고 해서 소설인 것은 아니다, 라는 걸 이 책으면 알게 된다.
공황장애가 상담 한 번 받으면 내적 갈등이 다 풀려 치료된다고? 내용 뿐 아니라 문장
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 그런데 내용은 무겁다. 불협화음으로 삐걱거리는 소설이다.
<살고 싶다>는 한 달 전에 읽어는데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아예 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다
군대에서의 자살 문제를 다룬 소설이었던 것만 설핏 기억났다. 흠.
작가들이, 장편을 쓸 때 문체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 알았으면 좋겠다.
<피에로들의 집>도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앞의 두 작품이 워낙 제값을 못해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후광효과를 받았다. 그래서 별 세개.
2. 이 작품의 배경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가져왔기 때문에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의 삭막함, 소외, 고독의 이미지를 이 화가보다 잘 표현한 사람이 있었던가.
1882년에 태어나 1967년 5월 15일 뉴욕에서 사망.
3. 윤대녕의 최고 작품은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윤대녕에 반한 것도 이 소설 때문이었다. 그 기대감으로 <피에로들의 집>을
읽었는데....... 상처 입은 자들이 모인 곳 '아몬드나무 하우스'. 그런데 뭔가 그들의 상처가 깊이
와닿지 않는다. 너무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구성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 내 내면에
스며들기 전에 빠르게 증발해버렸다.
감동이든지, 충격의 파문이든지, 무엇이든지 남겨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다만, '난희'라는 전 여자친구와의 통화 부분에서 좀 가슴이 뭉클하고 아팠다.
4. 주인공은 난희에 대해 얼마만큼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이 난희를
대중영화 쪽으로 옮기도록 부추긴 만큼 마음의 짐이 상당하리라 여겨진다.
이상하게 이 부분이 난 제일 공감이 되었다. 난 난희가 어떻게 살아갈지 무척
궁금하다. 난희 부분을 떼어내서 소설을 한 편 써보고 싶어질 정도이다.
5. 박윤정과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6. 장점을 한 가지 더 말하면 마마의 존재가 소설의 전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캐릭터적인 측면에서 개셩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누군가는 마마라는 인물 설정이 '작위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정도의 작위는
소설 속에서 충분히 허용가능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