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새가 느슨해져 물을 틀 때마다 빠져버리는 저 ‘주둥이’. 물줄기를 가느다랗게 조절하는 이 ‘주둥이’가 빠져도 수리하려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하나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파겠지. 두터운 침묵과 그 위에 쌓이는 냉기는 쌀에 쌀벌레가 그대로 묻어 나온 여름을 기점으로 더욱 깊어졌다. 그는 집 안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먼저 집에서 보내온 김장 김치를 먹기 쉽게끔 잘게 잘라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지 않았다. 불가피한 대화나 싸움이 간간히 끼어들었다.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거나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무뚝뚝하게 응수하거나.
수체구멍을 막은 다량의 머리카락을 또 다시 목격한 그가 작은 누나에게 화를 낸 게 사일 전이었다. 결국 청소와 진공청소기 청소로 초점이 확대된 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누나가 진공청소기를 분해하여 부품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닦아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상념의 도움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진척시켰다. 진공청소기가 청소에 필요한 도구이고 수단이라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청소보다 진공청소기를 청소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진공청소기는 순수학문인 것이다. 빌어먹을 응용과학이 아니라 순수학문이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경시받는 게 아닌가. 작은 누나는 가시적인 성과만을 급급하게 갈구하는 이 빌어먹을 사회를 닮았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순수과학인 기초학문이 아니던가. 더러운 진공청소기로 청소해봐야 바닥은 더욱 더러워질 뿐인데. 그리고 벽 틈에 낀 곰팡이를 식초로 닦아낸다던가, 새까매진 마우스 패드를 빤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순수과학이다. 누구도 열쇠뭉치를 식초로 닦아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까. 돈육의 돈은 바로 돼지 돈, 바로 이것이 작은 누나를 초조하게 만든 진짜 이유이리라. 직장을 그만두고 30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가는 와중에 학비를 벌기 위해 모아놓은 돈을 다 쓴 이후에는 과외까지도 하고 있지 않은가. 일요일임에도 아침 일찍 나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다 이해했고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