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이 책이 그렇다. 아니, 이 책은 즐거움을 넘어 황홀함을 느끼게 한다.
읽었던 혹은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보여주는 삽화들을 그저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책 표지의 주인공 앨리스처럼 이야기 속으로 통하는 구멍 안에 어느샌가 빠져든 나를, 말 그대로 문득 발견하게 된다. 황홀함과 함께!
사실 이런(?) 책을 그리 즐기지 않는데, 이유는 읽을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의 균형이 대개는 맞지 않아서다. 볼 수 있는 게 많으면 읽을 수 있는 게 부족하고, 읽을 수 있는 게 많으면 볼 수 있는 게 부족한 것. 더구나 '책은 모름지기 읽는 것'이란 생각(편견)을 가진 나로서는 특히 읽을 수 있는 게 부족하면 영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래컴에 관한 딱딱하지 않은 전기이자 래컴 삽화에 대한 짧지만 친절한 해설서인 이 책은 볼거리만큼이나 충분한(넘치는) 읽을 거리를 담고 있다. 이는 래컴 전문가이자 수많은 삽화가의 작품을 큐레이팅한 저자의 성실성(이 책에 담긴 수많은 자료와 삽화는 성실성 없이는 찾을 수도 골라낼 수도 없는 것투성이다)과 안목 덕분일 것이다. 매우 사소한 일화부터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장면들은 보는 눈을 읽는 눈으로 바꾸기에 충분한데,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이 그렇다.
"월터 스타키는 고모부가 '낡은 푸른 양복과 헝겊 슬리퍼 차림으로, 팔레트를 한 팔에 얹은 채 손에 쥔 붓을 휘두르며 작업실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것'을 봤을 때 고블린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런 사적인 언급은 산비탈의 날벌레 사건과 <<걸리버 여행기>>의 말벌 삽화 사이의 확실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의 압권은 다른 것에 있는데, 바로 책의 '만듦새다. 이는 황홀함을 몇 배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출판 쪽 일에 약간의 경험이 있어 이 책 표지와 본문 용지가 가격 때문에 대개는 꺼리는 재료라는 걸 알고 있다. 본문과 삽화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물론 자그마한 삽화 하나하나의 배치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편집이 얼마나 공들인 작업의 결과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에 끌려 내친김에 원서까지 장만했는데, 편집은 물론 삽화의 질까지 오히려 원서보다 나아 보였을 정도니 그 정성이 그저 나의 느낌만은 아니라는 것을 감히 확신할 수 있다. 이 책을 만든 분 혹은 분들은 정말 이 책을 만들고 싶어 만든 분 혹은 분들이리라는 것까지.
오랜만에 느끼는 황홀함을 나누고 싶어 아끼는 이 몇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책 선물은 거의 안 하는 편인데도. 모두 좋아 하니, 모두 무척 좋다 하니 내가 괜히 뿌듯하다. 멋진 책 만나게 해준 '꽃피는책'에 고마움 전한다. 더 멋진 책 만들어주시길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말도 함께.
이 앨리스는... 존 테니얼 경의 상상력에서 나온 여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더 나이가 많고 세련됐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는 더 부드럽게 명멸하는 상상력의 빛이 존재한다. 이는 그녀늘 그저 예쁘장한 어린이의 영역에서 끌어올린다. ... 래컴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테니얼적 유형의 토대를 재작업하고 윤색함으로써, 이 이야기에 이상하고 꿈결 같은 신비로움을 정말 놀랄 만큼 풍부하게 더했다. ... [그리고] 놀랍게도 그림 속이 손으로 만져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