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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ond님의 서재
  • 가랑잎에도 깔깔
  • 김송은
  • 12,600원 (10%700)
  • 2022-06-17
  • : 114

놀랍다, 그 기억력이. 보르헤스 소설의 주인공,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첫 에세이라는데, 애초 쓴 것이 아니라 흘러나온 것을 갈무리한 듯, 장면은 섬세하고, 인물은 싱싱하며, 사건은 생생하다. 소리면 소리, 냄새면 냄새, 감촉이면 감촉, 들리고, 나고, 쓸리는 듯하다. 그때 그 교실, 그 아이들, 그 사랑, 그 날뜀, 그 가난, 그 애틋함이 절로 되새겨진다. 에세이가 한 사람의 기억 말고는 다른 것이 아니기도 하니 이만큼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도 없는 셈. 부럽다. 그 기억력이.

 

멋지다, 그 문장들이.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첫 에세이라는데, 문장은 이미 절대 고수다. 묘사면 묘사, 서사면 서사, 거침이 없다.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로 시작해 시로 끝맺기도 하고, 시로 시작해 소설로 끝맺기도 한다. 에세이가 곧 시적 산문이고, 에세이가 곧 플롯 없는 서사니 이만큼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도 없는 셈. 부럽다. 그 문장이.

 

기쁘다, 오랜만에 가까이 두고 오래 읽을 책을 만나.

울적할 때 읽으면, 웃게 만들 것이다.

중구난방일 때 읽으면, 울게 할 것이다.

웃게 만들고 울게 하는, 친구 같은 책을 만나, 오랜만에 기쁘다.

"에에에에에이 뻥 치시네. 거짓말도 정도껏 하셔야죠. 자기가 더 예쁘면서." …… "아냐, 진짜야. 나중에 너희도 알게 될 거야. 지금 너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아유, 요 모습 그대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소녀 같았던 가정 선생님의 말투가 너무 폭신해서, 나는 하마터면 그녀의 말을 믿을 뻔했다. 헌데 지금이 가장 반짝인다는 그 말에 나는 왜 조금 슬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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