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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ond님의 서재
  • 그녀를 그리다
  • 박상천
  • 9,000원 (10%500)
  • 2022-05-15
  • : 390

이 시집은 울음이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꺼억꺼억이, 홀로 있어 맘껏인 엉엉이, 저도 모르게 한 줄 조용히 흘러 울음인지 눈물인지 분명치 않은 ‘무음’이 있다.


울음들은, 그렇게 있는 채, 우리에게 옮겨온다. 샤워 물줄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능소화 꽃잎에 얹혀 오기도 하며, 찔레 가시에 묻어오기도 한다. 이불에, 휴대전화 주소록에, 김칫국물이 벤 도마와 그 위에 내리는 햇볕에, 커피 머신에, 이적과 김종서의 노래에, 맞지 않는 단추에, 쑥갓에, 양치 컵에, 담금술에, 그리고 발자국 소리에 숨어오기도 하고, 실려 오기도 하며, 터벅터벅 소리와 함께 걸어오기도 한다.

울음들은, 그렇게 듣노라면, 잃은 사람을 떠오르게 하고, 잃으면 안 되는 사람을 헤아리게 하며, 잃을 수 없는 사람을 부둥키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떠올리고, 헤아리고, 부둥키다 보면, 종국에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홀로 있어 맘껏인, 저도 모르게 한 줄 조용히 흘러 울음인지 눈물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 듣는 이에게로 온다. 어떤 울음은 잠시, 어떤 울음은 좀 더 오래, 또 어떤 울음은 읽던 책을 덮게 할 만큼 꽤 오래.

 

다만 시인은 그렇게 울지 않는다. 그렇게 울지 않을 작정의 징표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기에. 시 안에 그런 울음들을 몽땅 넣었기에. 홀로 몰래 다른 울음을 울고 있기에. 시인은 그 다른 울음은 ‘가능한 한’ 시로 들려주지 않겠다 했으나 울음이 어찌 맘대로 될까. 기다리다 보면, 정성을 다해 꺼억꺼억과 엉엉과 무음을 곁에 가까이 두고 오래 읽다 보면, 또 다른 울음들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고 싶으나 시인은 사뭇 힘겨울 그런 만남을.

 

한 번쯤 깊이 울고 싶다면, 울어 위로받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시집이다. 잃으면 안 되는 사람을, 잃을 수 없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라면 더욱. 울음은 넘칠 테지만, 그만큼의 위로도 쏟아질 테니. 이를테면 이런.

 

그래도 이 막막한 시간 속 / 몇 벌의 옷으로. / 몇 개의 그릇으로, / 늘 거기 있는 당신, 고마워요.

잘 지내,
가끔 찔레꽃, 능소화, 수국으로
당신이 보낸 소식 들으며
나로 그렇게 지내 볼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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