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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사회적 책임, 친환경을 중시하는 기업’(쉘) ‘인간적인 노동조건 및 생활 여건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기업’(마텔) ‘공장 근로자가 품위와 존중으로 대우 받는 기업’(갭)

홍보 책자에 나타난 기업의 이미지는 믿음직스럽다. 광고에서도 마찬가지. 건전하고 정정당당하며, 어린이를 좋아하고 여성을 존중하며, 가정을 보호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로 그려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도 잊지 않는다. 두꺼운 분량의 환경보고서와 사회보고서를 발표하고, 나아가 인권전담반을 두고 ‘활동규범’을 제시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사회공헌활동’을 벌이느라 구슬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석유재벌 쉘은 북해에 원유 시추시설을 폐기하려다 반발을 샀고, 나이지리아에선 군부와 공조해 원주민 탄압과 환경오염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세계 최대 완구기업 마텔의 바비 인형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여성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 전쟁포로, 신생아들의 사진들로 구성된 도발적인 포스터로 사회공헌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탈리아 패션 회사 베네통은 터키에서 12살 어린이들을 고용해 의류제품을 생산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널리스트인 저자들은 잘라 말한다. “값싼 이미지 보호 전략이나 허언에 넘어가지 말라. 그들이 내뱉는 사회공헌활동이란, 한 마디로 선전용 개그에 불과하다.” 책은 제목만큼 직설적이다. 유명 브랜드 업체들이 화사한 이미지 뒤에서 노동 착취와 아동 노동, 군부독재와의 협력, 전쟁자금 지원, 환경 파괴, 동물 학대 등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음을 조목조목 고발한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유명 브랜드의 기업들을 추려낸 뒤 전자, 의약, 석유, 식료품, 완구, 스포츠 용품, 수출업과 금융업 등 분야별로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댔다. 나이키·네슬레·델몬트·리바이스·리복·맥도널드·몬산토·월마트·월트디즈니·코카콜라·화이자 등 웬만큼 이름을 들어본 기업들은 다 나온다. 삼성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책 말미에는 아예 거대 기업집단(콘체른)의 간략한 소개와 문제점,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담은 ‘블랙 리스트’를 공개했다.

거대 기업집단들은 제3세계에서 수백만명의 노동인력을 착취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지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고 그곳의 발전과 번영의 기초를 마련해준다고 항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공장에서 1주일 내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이들이 많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워치’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의 멕시코 공장에선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불법임신 테스트를 받고, 하체 검사까지 받았다. 임신한 여성을 채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동 노동을 묵인하는 곳도 많다. 코코아의 원산지인 서아프리카 상아해안에서는 8살짜리 어린이가 5만원이 채 안되는 돈에 팔리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코코아를 마시는 것은 아이들의 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석유광물기업들은 앙골라, 버마, 콩고, 수단 같은 분쟁지역과 독재국가에서 원료를 얻는 대가로 무기 거래와 내전, 반란, 폭력적인 군정에 음성자금을 대고 있다. 바이엘의 자회사는 콩고에서 탄탈 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반군에게 돈을 건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부정한 거래’에는 영국 런던의 삼성 경영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다임러크라이슬러 계열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사장은 “기업의 가치는 응분의 사회적 책임도 떠안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높아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한 자회사는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고 전 세계적으로 지탄 받는 대인지뢰를 생산하고 있다.

책에는 이밖에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약품실험을 일삼는 제약업체, 빈민국을 상대로 투기를 일삼는 금융업체, 개발도상국의 독재자들에 자금을 대는 거대 기업 등의 실체가 벗겨진다. 이들 기업의 검은 손은 서구 정치 권력자들에게까지 뻗어있다. 저자들의 비판적 시각은 개별 기업들을 넘어 신자유주의 문제에까지 가닿는다. 신자유주의적인 정부와 세계기구들은 점점 거대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을 자처하고 있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자유가 결국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사람들의 자유는 부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온 비윤리적 기업의 문제점을 작정하고 파헤친 종합보고서다. 겉과 속이 다른 ‘나쁜 기업’의 실상을 확인하는 일은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업의 권력은 소비자들에게서 얻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소비자로서, 나아가 시민으로서 우리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에 언급된 악덕기업 제품들은 사지 않는 것이다. 또 기업들에 한층 더 투명성을 요구해야 하고, 소비자들끼리 연대해야 한다.

저자들은 의식 있는 소비자들의 행동에 기업들의 권력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실제로 2001년 이 책의 초판이 발간된 뒤 책에 거론된 일부 기업은 군사정권과의 관계를 끊거나 인권 개선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것이라고.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 경향신문 김진우 기자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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