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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1377님의 서재
  • 감정술사
  • 이원정
  • 13,500원 (10%↓750)
  • 2026-09-10
  • : 1,330

이 책은 작고 가벼워서 서울 가는 길에 가방에 넣었다. 기차만 왕복 5시간. 갈 때는 주로 숙면을 취하지만, 지하철 이동까지 합하면 서울행에서 책은 필수이다. 요즘 사람들로 빼곡한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럴 때면 다가가 “무슨 책 보세요?” 하고 묻고 싶어진다. 물론 실제로 말을 걸어본 적은 없다.
그날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고 문득 생각나 가방에서 『감정술사』를 꺼냈다. 몇 줄을 읽자 순식간에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한 챕터가 끝나고 또 끝났다. 무빙워크에서도, 기차 대합실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책은 내 손과 눈을 놓아주지 않았다. “우와” 하다가 “헐” 하면서 읽었다. 단편소설 분량의 이 작품은 어느 순간에도 몰입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고, 글자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읽고 나니 내가 무엇을 본 것인지 모르겠다. 읽는 동안 나름대로 작품의 방향을 그려보았지만, 나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인물들의 관계도, 앞으로 벌어질 상황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딱 하나, 작가가 “옛다” 하고 거의 떠먹여준 단서 말고는.

죽은 사람의 피에서 슬픔을 증류하여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 아니 감정술사.
신의 마술이 아니라 심술로 아무리 비가 내려도 젖지 않는 사람.
누군가를 애절하게 기다리고 그리워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

호수, 달, 비, 슬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아련하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무엇을 느껴야 할까. 그러나 작가는 그 어떤 것도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저 아련했고, 아렸고, 그리웠다.

(중략) 이 작품의 슬픔은 달랐다. 슬픔을 앞세워 눈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슬픔이 사랑의 또 다른 말이자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더나아가...(생략)

비에 젖지 않는 남자는 죽은 사람의 피를 증류하여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슬픔을 삶을 썩게 만드는 불순물이라고 믿으며, 자신을 인간을 구원할 신이라 여긴다. 하지만 타인의 슬픔을 제거하던 남자는 정작 늘 비에 젖어 있던 아들의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들의 피가 살아 있었을 때보다도 더 따뜻하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품고 있던 마지막 슬픔까지 제거하는 일.

이 소설에서 비에 젖는다는 것은 단순히 슬프다는 뜻만은 아닌 듯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다리고, 잃고, 그 상실에 아파할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그렇다면 비에 젖지 않는 남자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어떤 감정도 자신에게 스며들지 못하는 존재로 봐야한다. 슬픔을 느끼지 못해 자신을 신이라 부른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감정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작품은 중반을 지나면서 서술어가 과거형에서 현재형으로 바뀐다. 앞부분이 남자가 슬픔을 제거하며 ‘신이 된’ 과거의 이야기라면, 이후는 아이가 세계를 경험하며 ‘인간이 되는’ 현재의 이야기로 봐야한다. 이름도 기억도 감정의 이름도 모르는 아이는 비와 달빛, 무지개와 타인을 만나면서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을 알아간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인물의 내면을 알고 있지만, 행동과 말의 의미를 대신 설명하기보다 끝까지 보여준다. 비와 젖음, 달빛과 호수, 증류된 피를 보여줄 뿐. 그래서 아이와 함께 감정의 정체를 상상하며 더듬어가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한 말....

“OO OOO”

이 말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는 아이가 비로소 사랑과 상실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제거해야 할 불순물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흔적이 아닐까.

『감정술사』의 감정은 비처럼 천천히 스며든다. 맑은 물에 떨어진 물감 한 방울처럼, 마음 한구석에서 시작된 아림이 서서히 번져간다. 여전히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편을 오래도록 아리게 하는, 아련하고 쓸쓸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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