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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1377님의 서재
  • 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16,020원 (10%890)
  • 2026-06-17
  • : 23,510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일명 모자무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생각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 갈 수 있는데, 나는 여기 있잖아. 그럼 생각이 진짜 나야? 여기 있는 내가 진짜 나야?”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전 대학원 시절 들었던 철학 강의가 떠올랐다. 외부 철학자를 초빙해 들은 강의였는데, 두 시간 가까이 열심히 설명을 들은 결과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상하게도 단 하나였다.

“벌레가 나고, 내가 벌레다.”

강의실을 나와 우리는 한동안 그 말을 씹고 또 씹었다. 잘근잘근.

 

그런데 《백야》를 읽으며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생각이 나인가. 아니면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나인가.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는 흔히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나에게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보다 훨씬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몽상가가 만난 나스텐카는 정말 현실의 사람일까. 아니면 몽상가가 자신의 외로움과 욕망으로 만들어낸 관념의 산물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도작가는 나와 궁합이 그닥이다. 이제는 알것 같아. 왜 내가 그의 글이 좋게 느껴지지 않는지. 그는 장황하다. 엄청나게 장황하다. 설명은 길고 인물들은 끝없이 떠든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배운다. 스스로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착각이었다. 나는 장광설과 만연체를 힘들어한다. 그리고 도작가는 장광설과 만연체의 대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읽게 된다. 싫은데 읽는다. 읽으면서 투덜거리고, 투덜거리면서도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정확하게 까려고!!!

 

《백야》의 주인공인 몽상가는 이름조차 없다. 내가 못 찾은 것인지 정말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동안 그는 끝내 이름을 얻지 못했다. 반면 몽상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나스텐카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정인이 있다. 그런데도 몽상가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아니, 사랑이라고 믿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단 4일이다. 밤 세 번, 그리고 마지막 한 번.

처음에는 4일 만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있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불같은 4일간의 사랑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간 두 사람. 결국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 4일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10년의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고, 누군가에게는 단 며칠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기억이 된다. 그러니 4일 만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무엇을 사랑했느냐이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런데 《백야》의 몽상가는 과연 나스텐카를 사랑한 것일까.

 

몽상가는 끊임없이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감정을 말하고 상상을 말한다. 어찌나 떠드는지 듣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그런데 그 긴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것은 아닐까. 몽상가는 현실의 나스텐카보다 자신이 만들어낸 나스텐카를 더 사랑한다. 실제 사람이라기보다 관념 속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 동안 자꾸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떠올랐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 사람은 살인을 하고, 한 사람은 사랑을 한다. 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칼을 들고, 한 사람은 밤거리를 배회한다. 전혀 다른 인간처럼 보인다. 그런데 둘은 닮았다. 둘 다 현실보다 생각을 더 신뢰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사상을 현실보다 앞세운다. 그는 머릿속에서 인간을 분류하고, 특별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을 구분하며, 결국 그 생각을 현실에 밀어붙인다. 반면 몽상가는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상상한다. 현실을 살아가기보다 가능성을 꿈꾼다. 실제 삶보다 머릿속 삶이 더 풍요롭다. 한 사람은 관념 때문에 살인을 하고, 한 사람은 관념 때문에 사랑을 한다. 둘 다 관념 속 인간일뿐이다. 이 둘은 내가 볼때 찐따다.

 

그래서 《백야》를 읽으며 처음 떠올린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생각이 나인가. 아니면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나인가.

 

생각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간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몸은 늘 현재에 묶여 있다. 몽상가는 생각으로는 누구보다 자유롭다. 그러나 그의 몸은 늘 혼자이다.

 

백야라는 제목도 어쩌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밤인데 밤이 아니다. 어둠인데 완전한 어둠도 아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이다. 몽상가가 살아가는 방식도 그렇다. 현실인데 현실 같지 않고, 사랑인데 사랑 같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첫사랑 이야기로 읽지 못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도작가는 《죄와 벌》에서 생각이 인간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백야》에서는 생각이 인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이 삶을 살아가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가.

 

아직도 답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진짜로 알겠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무리 그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 안 읽을 거냐고?

아니. 싫으니까 더 읽을 것이다. 더 읽고 더 깔 것이다. 계속 읽고 계속 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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