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분노가 가득할 줄 알았다. 가정법원에 오기까지의 사건들은 대개 누군가의 배신과 폭력, 무책임과 외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먼저 치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난 뒤 오래 남은 감정은 의외로 분노가 아니라 씁쓸함ㆍ비통함이었다.
법원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들, 신뢰와 책임, 존중과 배려가 무너진 자리에 법이 차지한다. 그러나 법이 지나간 자리는 생각보다 곱지 않다. 그것은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와 닮았다. 판결은 내려지고 사건은 종결되지만, 무너진 관계와 상처 입은 마음까지 원래대로 되돌려 놓지는 못한다. 법은 무너지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이미 부서진 삶을 온전히 복원하지는 못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폐허 이후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법의 판단을 들려준 뒤, 심리 전문가가 그 이후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드라마는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끝난다. 그러나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다. 아이는 부모의 갈등을 기억한 채 성장하고, 배신당한 사람은 쉽게 타인을 믿지 못하며, 가해자 역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이어간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흔을 안고 다음 날을 살아간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다. 이것이 삶이 잔인한면이다.
읽는 내내 마음 한편에는 오래된 질문이 머물렀다. 왜 인간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남긴 상처를 끝내 인정하지 못하는가. 반성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삶을 추슬러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법이 지나치게 가해자 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법은 감정을 판단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온전히 위로하지도 않는다. 증거와 절차, 요건과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기대하는 정의와 법이 구현할 수 있는 정의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물론 법은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가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렵게 합의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법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분명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법은 책임을 묻고 경계를 긋는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결국 그 몫은 남겨진 사람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통쾌한 책이 아니다. 권선징악의 결말로 독자를 안심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의 연약함과 미성숙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읽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기보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정말 타인의 삶에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는 가정법원의 사례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면서 누군가의 일기장이다. 누구나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분노보다는 씁쓸함이 더 크게 남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간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이란,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살아갈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상흔위에 피는 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