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bada1377님의 서재
  • 읽기의 위기
  • 크리스토프 엥게만
  • 15,300원 (10%850)
  • 2026-05-15
  • : 4,975

읽기의 위기? 너무 뻔한데~ 우리는 다 안다. 이것이 굉장히 뻔한이야기라는 걸. 이 책은 과연 이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새롭게 접근할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AI와 읽기의 위기. 너무 익숙한 조합 아닌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

"쇼츠 때문에 집중력이 줄었다",

"AI가 글을 대신 써준다"는 이야기는 지루하다. 그런데도 책은 뻔한 이야기를 짜증내지 않고 읽을 만큼 흥미로웠다. 그것이 철학의 묘미인가, 우리가 이미 체감하고 있는 변화를 읽기라는 행위 중심으로 쉽게 설명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읽기의 외주화'였다. 이미 뭐 알고 있는 단어지만, 이 단어가 읽기에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인지 기능을 외주화하며 살아간다. 계산은 계산기에게, 길 찾기는 내비게이션에게, 기억은 검색엔진에게 맡긴다. 하다못해 TV를 끄고 키는 일에도 외주를 준다.

 

“지니야 TV 켜!!”

 

그렇다면 읽기 역시 플랫폼과 AI에게 넘겨야 하는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원문보다 요약을 읽고, 해설 영상을 보고, AI에게 핵심을 묻는다. 읽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위임되고 있다. 강의를 요약해 주고 문제를 내주기도하는데, 고작 읽기 정도야 뭐~

 

책은 이 상황을 다소 불안하게 바라본다. 과거 라틴어가 성직자와 소수 지식인의 언어였던 것처럼, 미래에는 모두가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음에도 실제로 읽고 해석하는 사람은 소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면, 미래에는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음에도 읽지 않는 사회가 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새 라틴어”라고 한다.

모두가 읽을 수 있지만, 아무나 읽지는 않는 사회. 이 표현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처럼 느껴졌다.

 

다만 책을 읽으며 계속 남았던 질문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읽기의 외주화가 반드시 나쁜 것인가. 계산기를 쓰듯 읽기 역시 도구화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읽기를 외주화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검증 능력 없이 외주화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책은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지지만 답은 주지 않는다. 해답서가 아니라 문제제기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이 말하는 질문들은 새롭지 않다. TV가 나왔을 때도, 인터넷이 퍼졌을 때도 책의 종말을 말했다. 그런데 책은 살아남았다. 늘 그래왔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읽기는 처음으로 '대체 가능한 행위'가 되었다. AI는 요약하고, 정리하고, 쓰고, 질문에 답한다. 이전의 독서 위기 담론이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이거다.

 

인간이 직접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새로운 답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질문을 AI 시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남는 건 끄덕임보다 약간의 찜찜함(?)이 남는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확신이 생긴다. TV도, 인터넷도 결국 책을 죽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책은 누구나 읽을수 있지만, 아무나 읽을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 부분을 책에서는 <성직자화>된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결국 AI 이후에도 살아남는 건, 끝까지 읽는 사람, 이 책이 궁금해서 이 리뷰마져도 끝까지 읽는 사람일 것이라는 반증이다. 어때? 기쁘지?^^

 

그런데 말이야.

이 책은 꼭 끝까지 읽는 사람만 또 읽는 다는 거야. 읽어야 할 놈들은 읽지 않고 말이지.

 

세상은 참 아이러니야.^^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