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F에 의한, F를 위한, F의 책
이 책은 한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돌본 이야기를 기록한 에세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 의사는 참 성실하고, 아마도 흔하지 않은 유형의 의사일 것이다.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진심이 묻어난다. 다만 그 진심이 책 전체에 아주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어, 독자가 그 사실을 잠시라도 잊을 틈은 거의 없다.
등장하는 환자들 역시 모두 쉽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상황은 반복해서 어렵고, 감정은 계속해서 무겁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공감하려 애썼다. 작가의 시선에 동의해 보기도 하고, 환자의 입장에 서 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공감보다는 묘한 피로가 먼저 쌓였다. 위로를 받기보다는, 위로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오래 머무는 기분이었다.
사건은 제시되지만, 그것이 어떻게 독자의 사유로 이어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힘들었고, 흔들렸고, 성찰했다는 고백은 반복되지만, 그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끝내 제시되지 않는다. 인문 에세이라는 분류가 붙어 있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질문이나 해석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하루의 감정들이 차례로 기록된다. 매우 성실하게 정리된 기록이라는 인상은 남았다.
책 전반에는 ‘의사는 결국 감당해야 한다’는 전제가 조용히 흐른다. 의사는 무너질 수 있지만, 다시 의사로 돌아와야 한다는 태도다. 읽다 보니 이 전제가 오늘의 독자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조금 궁금해졌다. 어느 순간에는 위로를 받지 못하는 쪽이 오히려 미안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박완서의 글을 다시 읽었다. 질문이 남는 글이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성찰의 태도가 더 많은 의사들에게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다만 그 성찰이 읽는 사람에게까지 자연스럽게 건네졌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읽다 잠시 졸기도 했다. 마음이 편안해져서라기보다는, 생각이 멈춰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