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김은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고리타분한 19세기 사상으로 만들어낸 위인의 이야기다.
네이비실 대원, 하버드 의사, 나사 우주비행사. 세 단어만으로도 완벽한 성공의 서사가 완성된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과 편견을 딛고 세계의 정점에 오른 인물. 많은 부모들은 그의 이름을 자녀에게 들이밀며 말한다.
“봐라, 저 사람도 해냈잖아. 너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용기와 희망’보다 더 깊은 욕망이 숨어 있어보인다. 아니 숨어있다.
그것은 “나의 실패를 자녀가 완성해주길 바라는 욕망”이다.
조니 김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불안을 자녀의 성취로 덮고 싶은 세대의 거울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영웅 서사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 뒤에 감춰진 사회적 불평등, 문화적 조건, 심리적 상처를 지워버린다.
조니 김 자신은 영웅으로 불리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내 역할을 찾으려 했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이 참... 대부분은 알지만 그걸 찾기가 쉽지 않다.
그의 말은 우리 사회가 그에게 덧씌운 ‘완벽함’이라는 가면을 벗기려는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대중은 그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조니 김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자녀의 어깨를 누르는건 아닐까
개그맨 김수지가 연기하는 청담동 맘을 욕하면서 은근 갈망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눈을 크게 떠야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니 김이 되어라”는 명령이 아니다.
오히려 “너의 조니 김을 찾아라”는 격려다.
누구나 우주비행사가 될 필요는 없고, 모두가 하버드를 향해 달릴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남의 신화’를 모방하지 않고 자기 서사를 써내려가는 힘이다.
조니 김의 이야기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이지만,
그 가능성을 타인의 기준으로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영감을 주는 신화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그의 삶을 찬양하기보다, 그를 통해 우리 안의 욕망을 성찰하는 일.
그것이 진짜 ‘조니 김 신화’가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