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민담을 통한 자기 이해의 가이드북
책장을 덮고도 한참 동안 마음이 잔잔하게 울렸다.
책은 단순 심리학책이기 보다, 민담 속 이야기를 나의 삶과 겹쳐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슴도치 한스, 아리아드네, 바리데기 같은 인물들은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내 안의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는 대변자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읽는 내내 민담이 곧 내 삶의 자서전 같다는 기묘한 감정에 잠겼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융 심리학과 민담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융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난해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융의 사상을 민담과 함께 풀어내면서, 무의식과 상징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 융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토록 쉽고 재미있게, 또 가독성 좋게 융을 설명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민담이라고 하면 흔히 아이들만의 세계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 속 민담들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들려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순수하면서도 깊다. 동시에 어른인 나에게는, 그 순수한 이야기 속에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상처와 갈망이 불쑥 드러났다. 아이의 마음으로 듣고, 어른의 마음으로 곱씹으며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민담은 결국 세대를 넘어선 치유의 언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읽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과 상징을 통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잊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들려준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에도 꿈은 늘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에게 위로받은 느낌이다.
돌아보면 나는 감사하게도 꿈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어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잊고 지냈던 융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책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꿈의 일기’에 나는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꿈을 자주 꾸지 않는 것 같아, 꿈 일기를 써볼 기회조차 줄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더 이상 꿈을 기록하지 못한다 해도 ‘민담’이라는 또 다른 길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제 융을 한 번 시작해 볼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