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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
  • 폴리 호배스
  • 9,000원 (10%500)
  • 2012-11-05
  • : 218




"사람들은 밭이 썩는 꼴을 못 봐주지만 썩는 것도 있어야

모두 제대로 자랄 수 있단다."

 

조금은 기괴하고 유쾌한 성장 소설!

 

플로리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부자 노인들이 은퇴 후 삶을 보내는 곳이다. 모든 것이 느릴 것 같은 이곳에, 래칫은 자기 행복만 생각하는 쌀쌀맞은 엄마 헨리엇과 살고 있다. 작고 우중충한 아파트 지하 2층에서 끊임 없이 엄마의 비위를 맞추는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던 래칫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메인에 사는 낯선 친척에게 보내진다. 엄마는 울창한 숲을 지나 바닷가 절벽 위에 선 낡은 고성에 살고 있는 무려 91살의 쌍둥이 할머니 펜펜과 틸리에게 래칫을 떠안기다시피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다. 숲에는 곰들이 뛰어다니고, 블루베리가 가득가득 심어져있는 그 곳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겪으며 래칫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성장의 과정은 누구나 겪게 되지만, 천편일률적인 도시 환경에서 성장하는 우리들은 외국의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성장 소설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내게도 펜펜과 틸리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기괴하고 주변 인물들도 하나같이 어딘가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본격적으로 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중반부 쯤에 투입된 하퍼 덕분이었다. 부모에게 버림은 것도 모자라 자신을 키워주던 이모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인 줄 알고 펜펜과 릴리의 성에 오게된 하퍼. 래칫 또래의 열세살 소녀의 이 기구한 사연은 누가봐도 참 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퍼는 안하무인에 싸가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성격으로 단숨에 '골치덩이 밥맛'으로 전락했다. 인터넷 중독의 하퍼는 전화도 받는 것 밖에 되지 않는 이 고성에서 끊임 없이 인터넷 쇼핑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펜펜과 릴리에게 막말은 물론, 래칫의 아픈 상처까지 공격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하퍼가 등장함으로써 이야기가 드디어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막장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하퍼를 욕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자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펜펜, 릴리, 래칫, 하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님에게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펜펜과 릴리의 어머니는 직접 단두대를 만들어 자신의 목을 잘라 자살했다. 래칫은 늘 자식인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는 엄마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하퍼는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한명의 피붙이에게 버림받았다. 이 네명이 엉겁결에 한 집에 살게 되면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이 돌아오면서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펜펜과 릴리는 둘 이외의 다른 이에게 정을 주고 돌볼 줄 아는 어른으로, 래칫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녀로, 하퍼는 자신의 적성을 찾아 꿈을 꾸기 시작한 소녀로 성장한다.이 유쾌하고 기괴한 성장기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꽤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비록 처음 생각했던 진지하고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이 이야기 속에는 큰 감동과 철학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은 언제였을까? 나는 그 계절에 얼마나 반짝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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