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걸 팔자소관으로 돌리지 못하고 시골의 무지몽매 탓으로 단정하고, 자식들이라도 어떡하든그곳에서 빼내고자 한 것은 처녀 적의 엄마의 서울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P23
문둥이가 애들을 잡아다가 간을 빼먹는다는 말을 믿지 마라. 그사람들도 우리하고 같은 사람이다. 사람이 차마 못 하는 건 그 사람들도 못 한다. 있지도 않은 걸 만들어서 무서워하는 것처럼 바보는없다. 문둥이 같은 사람을 만나도 놀라지도 도망가지도 말고 천연스럽게 굴어라. 좋은 거고 나쁜 거고 한눈팔지 말고 앞만 보고 걷는 게 수다.
엄마의 말투는 늘 너무도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어서 정말옳은 소리도 우격다짐으로 들렸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러나 문둥이 얘기를 할 때는 엄마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타일러준 여러 가지 중에서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왠지 문둥이를 만나는 게 겁나지 않았다.- P55
"너는 공부를 많이 해서 신여성이 돼야 한다."
오로지 이게 엄마의 신조였다.- P64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P81
오래 삭혔다 먹는 게장 맛은 아무리 극찬을해도 모자라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는 좀 야만적인 표현을 써야만성이 찬다.-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