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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풍자소설 '바보선'에 나오는 뒤러의 목판화에는 광대가 뒤에서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그리스어로 디케)의 눈을 가려주는 모습이 있다. 정의의 여신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을 가려 정의를 보지 못한다는 풍자의 의미라 한다. 현실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법이 현실을 따라서 모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간은 정의의 여신이 다스리는 황금 세상을 꿈꾸었으나,  지금의 세상은 디케가 떠난 혼란스런 철의 세상일 뿐이며, 법은 너무 멀고, 너무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가 꿈꾸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황금 세상'은 '법'에 의해서, '디케의 율'에 따라서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디케의 눈'에서 이런 법과 정의, 진실에 대한 고민(어찌보면 변명을) 한다.
 
디케Dike는 그리스의 정의의 여신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여신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법 Dike와 같으며, 정의라는 뜻의 Dikaion과 그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정의의 여신(동시에 정의를 집행하는 법의 여신)은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눈은 안대로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저자인 금태섭 변호사는 바로 이 여신의 눈을 가린 안대를 보면서, 가려진 안대 속에 여신의 눈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며 법의 의미, 그 집행에 있어 어려움을 자신의 경험 등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디케의 눈'은 부제 그대로 한 변호사의 법으로 세상을 읽어가는 이야기이다. 알기 쉬운 생활법률, 법을 몰라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등등의 실용서가 아닌 그리 무겁지 않은 법에 대한 칼럼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진실은 과연 어디에'라던가 '창조론이 과연 과학인가 그리고 이것을 법으로 정할 수 있는가', '포르노와 표현의 자유', '형벌은 죄를 벌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인간을 교화하기 위해서인가' 등 주제 하나하나를 보면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해도 충분할 무게의 것들이지만 저자의 경험과 유명 판례 등을 통해 나름 쉽고 가볍게 풀어나간다.
 
일본식 한자어가 가득한 법전이나(지금은 바뀌고 있다지만),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너무 먼 변호사와 검사, 판사들의 글에 질려서(10 여전 전 수십페이지를 넘어가도 마침표를 찾을 수 없었던 어느 공안 검사의 논고를 보고 질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법을 너무 높고 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법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들의 일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이들도 인간들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글들의 모음이 '디케의 눈'이다. 
미국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미란다 원칙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별볼일없는 성폭행범의 이름이 미란다였고 이자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미란다 원칙을 만들었다), 너무 뻔뻔한 범죄자를 변호하는 얄밉디 얄미운 변호사들과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변호사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주는 것은 내게는 나름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솔직히 책을 보면서 검사이자 변호사로서 법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미국쪽 판례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이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로스쿨에서 연수를 하면서 그쪽 판례 등을 공부한 경력이 이번 책을 쓰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검사로서,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뛰는 저자의 좀 더 생생한 경험과 우리 법 현실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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