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siela 2008/05/05 22:23
siela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완득이'는, 한 아이가 사람들과의 만남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어떻게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 카바레 삐끼로 일하다 직장을 잃고 전국의 오일장을 찾아 떠도는 '난장이' 아빠와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베트남 엄마, 혈육은 아니지만 삼촌으로 부르며 같이 사는 정신지체아 민구 삼촌 등 완득이의 환경은 '불우'하다. 그러기에 완득은 제 자신 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갔고 세상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껍질 속에 자신과 자신의 분노를 숨기고 있는 완득을 알아 본 담임 똥주가 억지로 그를 끌어낼 때까지는.(아, 무슨 희생적인 선생님과 반항적인 아이의 헐리웃 스토리 같이 이야기를 요약해 버리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똥주는 기초생활수급자 완득이네에게 햇반도 얻어먹는 뻔뻔한 선생이고, 완득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도 이해할 줄 아는 속이 깊은 아이이다).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단은 재미있다. 아마 십대 아이들이 봐도 분명 재미있어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완득이라는 씩씩한 아이와 괴짜선생 똥주를 중심으로 여러 조연들까지 톡톡 튀는 대화와 행동을 보여주며 정감이 가도록 만들어준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글은 시종일관 입에 웃음을 머금게 하면서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의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도 있다(결말도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이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무언가 모를 허전함도 느껴졌다. 작가는 이 길지 않은 책에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 이주 노동자, 장애인 문제까지 많은 것을 이야기에 담고 싶어했다. 사실 이들 각각은 하나하나가 장편소설의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이다보니 짧은 완득이의 이야기에서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다보니 책에서는 '어, 완득이 녀석, 성격 한번 좋네. 베트남 엄마도, 난장이 아빠도 조금밖에는 힘이 들어보이지 않네 뭐, 괜찮은 것 같잖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갈등은 쉽게 해결이 되었다. 사실 현실은 더 우울하고 가혹한데.
정감가는 등장인물들은 톡톡 튀는 대화로 나름 개성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그 평면성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조금은 더 심각하게 고민을 해도 되고, 조금은 더 죽을 것처럼 슬퍼하고 좌절해도 될 것 같은데... 사춘기 격렬한 사내아이잖아. 아니 사실 내 불만은 다들 주인공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너무 밝다는 데에 있다.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아, 그래서 유쾌, 상쾌, 통쾌 완득이던가.
어쩌면 작가는 완득이 같은 환경이라도 주위의 어른들이 담임 똥주처럼, 아니면 하다못해 평범하지만 결국은 완득이네를 이해하는 이웃집 아저씨처럼만이라도 이웃의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책을 읽게 될 아이들도 자신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조금은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이야기에 담아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책은 완득이네의 주요 갈등이 해결되면서 흐믓한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완득이에게도,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다. 세상으로 나갈수록 완득은 더 많은 혼혈아 차별, 장애인 차별, 학력 차별, 빈부의 차별을 겪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쉽게 해결되고 해결될 것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완득이'는 일종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고, 아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꿈을 꾼다. 책에서 어떻게 꿈을 꿀 지 배운다면 언젠가는 모든 '완득이'들이 세상과 더불어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