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siela 2008/05/0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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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가 그토록 비참하게 유린당하고 죽게 되었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예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생겼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이지와 아쓰야라는 두 소년들에게 에마는 단순한 사냥감이었을 뿐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슬픔, 기쁨 등을 느끼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미성년자'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죄에 대해 뉘우침을 보여주었다면, 그들의 부모가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아들을 감싸는 대신 진심으로 참회를 했더라면, 딸의 복수를 원했던 나가미네의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다 소용없는 말이다.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가해자과 그들의 부모가 자신의 영혼으로 죄를 비는 경우보다는 죄를 축소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방황하는 칼날'과 '붉은 손가락' 두 편 밖에 안되지만 이로부터 감히 그의 성향을 짐작하자면, 그는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 같다. '붉은 손가락'에서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화내고 소리치고 발버둥치면 주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어주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그렇게 아이들을 키운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타고난 범죄자이던 아니면 환경이 키운 범죄자이던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죄없는 타인을 상처입히고 죽인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 아이들을 책임질 부모들은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맹목적으로 아이들의 죄를 덮는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소위 소년법이라고 불리는 법이 보호를 해준다. 두 편의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라고 읽혀진다.
점점 흉폭해지는 소년범죄(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차라리 평범한 인간들과는 다른 뇌를 가진 사이코패스라고 분류해버리고 싶은), 그리고 피해자보다는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처벌이 아니라 보호이다)하는 미성년자를 위한 소년법의 갈등 사이에서 여러 인물들이 방황을 한다. 법집행자인 경찰들도, 죄를 저지른 가해자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버지, 그리고 방관자이기에 공범자가 된 많은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몰라 이리저리 방황을 한다. 정의의 여신은 공평해야 하기에 눈을 가린 것일진데,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인가 그녀의 칼날은 옳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때로는 죄를 지은 자를 위해 상처입은 자를 더욱 더 상처입힌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성을 가져서, 그리고 가까운 미래 언젠가는 부모가 될 입장이기에 나가미네의 복수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기에 와카코의 마음과 행동에 공감했다. 악법이라도 법은 지켜야 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복수는 절대 안된다는 원칙을 되뇌고 있지만 마음은 나가미네와 와카코에게 기울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진심으로 바라는가. 법인가 정의인가. 원래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할 이 두가지가 불일치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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