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르지만 조화롭고 행복한...
siela 2008/05/0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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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과 금발을 지닌 아주르와 검은 눈과 갈색 피부의 아스마르. 인종, 종교, 신분 등 모든 것이 다른 아이들이지만, 아스마르의 엄마이자 아주르의 유모인 제난은 갓난아이 시절부터 두 아이를 형제처럼 같이 기르며 검은 산 속에 갇혀 있는 요정 진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요정 진을 구하러 가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이들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맞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 주제 가운데 하나인 용감한 왕자가 갇혀있는 공주-요정을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책을 만들어낸다. 처음 책을 보면 이야기보다는 섬세하기 그지 없고, 화려하기 비할데 없어 눈이 시린 그림에 눈이 간다. 이 그림에 반해 책을 샀고, 영화를 찾아 보았다. 그림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화려하기로는 애니메이션 쪽이 책에 비해 압도적이지만, 시간을 두고서 정교하게 표현된 이슬람 관련 문양이라던가 섬세한 그림을 살펴보기에는 역시 책이 좋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 주는 그림과는 별도로 내용을 보면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동화책이니 단순하게 즐기면 되겠지만, 책을 보는 동안 내게 떠오른 생각은 가끔 BBC 등에서 보았던 프랑스 내 이슬람 젊은이들과 경찰(또는 일반 백인 파리시민들)과의 충돌이었다. 책에서는 프랑스나 아랍이나 동등하게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한다. 마지막 문장도 "그리고 서로 다르지만 조화롭고 행복한 여덟 명의 사람들에게 별들을 뿌려 주었어요."라는 '다름과 조화,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서양의 fairy tale과도 아랍의 아라비안 나이트와도 다르다. 프랑스 내의 많은 무슬림들은 불법체류자로, 저임금 노동자의 신분으로 지내고 있고, 그들의 불만은 경찰과 무력 충돌을 불사할 정도로 컸다. 높아지는 실업률과 테러의 공포 속에서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두려워한다. 가면 갈 수록 다름에 대한 이해나 관용, 조화를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프랑스인인 미셸 오슬로는 이런 상황에서 아주르와 아스마르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지 않았을까 한다.
파란 눈과 왼쪽은 불길하다느니 등의 미신 대신,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에 코를 찌뿌리는 대신, 알지 못하는 종교를 비방하는 대신,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한다면, '다름'은 '틀림'이나 '더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철이 덜 든 어른들에게, 아름다운 동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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