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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가장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그림일기 쓰기였다. '왜 엄마는 매일 별 다른 일도 없는데 자꾸 그림일기를 쓰라고 야단치는 거지, 나는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써서 정말 싫어'라고 생각하며 일기를 쓰는 대신 야단맞는 것을 택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서른 중반이 넘어 알라딘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인생만화'를 보면서 다시  그림일기를 생각한다. 뭐라도 좀 끄적거려 볼까나, 뭐 일기인데 어때, 못 쓰고 못 그린다고 누가 뭐라고 할 리도 없잖아.  내 생활 속에서 만난 이런 저런 사람들, 이런저런 사건들을 그냥 그래도 망각 속으로 흘려 보내기에는 좀 아쉽지않아. '그냥 기억하고 싶어, 잊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과 더불어서.

책을 읽기 전에는 한겨레에서 느꼈던 진지한 모습만을 상상했으나, 천만의 말씀! '인생만화' 속에는 박재동 화백이 만났던 온갖 세상과 그가 가졌던 여러 생각, 감정이 매우 솔직하게 툭툭 튀어나온다. 이제는 관조의 나이에 든, 그렇지만 여전히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준비하는 정열적인 이가 세상을 애정있게 바라보며, 또는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며 그리고 쓴 것들이 잔뜩 들어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어도 좋고, 아니면 손 가는대로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그 그림일기 속에는 유흥준 씨, 명계남 씨, 오세영 씨, 이희재 씨, 고 신영식 씨 같은 유명인들 뿐 아니라 길가 매점 아줌마, 그림 그리다 만난 꼬마, 지하철에서 만난 아가씨 등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 벚꽃, 매화, 양재천 너구리, 한라봉, 익은 홍시, 돼지고기 김치찌개, 바벨탑처럼 쌓아올린 아들내미의 재털이 등 온 세상이 다 나온다. 그리고 일기이다 보니 가족들 이야기도 종종 나와, 나도 이제는 박재동 화백의 가족관계, 친구관계, 취미생활까지 어느 정도는 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림들은 때로는 픽 웃음을 나오게 만들기도 하고, 와~하는 감탄사를 흘리게도 하고, 잠깐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도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불끈불끈 들게 만든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초중고등 6년간 그림을 배웠는데, 왜 우리는 그리는 것을 겁내고 멀리 하는 것일까, 그냥 아무 종이에나 끄적거려도 좋은데 말이다. 그는 그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행복한 천형'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출근길에 여기저기 눈이 머무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골목길에서나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리면 대상과 대화하게 되고 친해지고

  사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어, 결국은 사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다.              (p. 129)

 

'인생만화' 속에는 이렇게 그리고 사랑하는 행복한 천형을 지고 살아가는 이의 진솔한 삶의 체취가 가득하다. 나도 좀 더 용감히 끄적거리고 쓰다보면 언젠가는 얇은 공책 한 권 쯤은 채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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