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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님의 서재
  • 당신을 이어 말한다
  • 이길보라
  • 13,500원 (10%750)
  • 2021-05-20
  • : 533
요즈음의 사회,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이길보라 감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한 적 없는 나마저도 어디에서나 그의 이름을 많이 봐 왔으니까. 이길보라는 스스로를 아티비스트(artist+activist)로 정의한 예술가이자 활동가다. 로드스쿨러이자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로서의 정체성을 영화에 녹여내고,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삶과 시선이 담긴 첫 사회비평집 <당신을 이어 말한다>를 읽게 되었다. 이름만 알고 있었던 이길보라를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코다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청인으로 태어나 청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한 번도 농인의 청인 자녀라는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길보라 작가의 모어는 한국어가 아닌 수어였고, 그는 풍성한 농문화 속에서 자라났다. 그런 그가 지적하는 청인 중심 사회의 문제점은 내가 전혀 자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름 관련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가시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많으니 도무지 나 하나만으로는 이 부조리를 타파할 수 없음이 더욱 선명해졌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연대하는 일의 중요성을 내내 곱씹게 되었다.







이길보라 작가는 여성 의제에도 꾸준한 목소리를 내오던 사람이다. 그는 그가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겪은 차별을, 여성의 경험이기에 묵살되고 마는 이야기를 지면에 거침없이 풀어놓는다. 생활 속의 교묘하고 직접적인 차별에서부터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마주한 구조의 병폐, 임신중절 경험과 여성의 성욕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가 그 모든 것을 겪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기 위해 목소리를 냈던 순간들은 책을 덮은 지금도 마음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정말이지 책의 제목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이길보라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움츠러들지 말고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서로를 이어 말해야 한다고.







책에는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창작에 대해 고찰하고 사유한 경험도 실려 있다. 그가 아티비스트로서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창작론을 다룬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어렸을 때 그는 NGO 활동가이자 영화를 찍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고, 이 두 꿈은 사실 그에게 하나였다.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의 경험을 토대로 왜 질문에 답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지, 실패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알려주는지를 이야기한다. 몰입하며 읽었고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이길보라의 멋진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소개해 준 것도 좋았다. 어딘글방의 아웃풋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이런 사람들이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니, 앞으로 만날 그들의 작품이 너무 기대된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지도 모르는 삶의 모습을 알게 되다니. 정말이지 귀한 경험이었다. 이길보라의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와 <기억의 전쟁>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만든 영화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길보라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를 이어 내가 말했듯 나를 이어 당신도 말하고 글 쓰고 외칠 수 있게 되기를.” 나보다 앞선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는 건 정말이지 큰 용기를 준다. 우리가 꼭 지고 있는 것 같을 때, 도무지 아무 것도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 당신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새로운 물결을 만들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주었으면 한다. 내가 어딘가의 당신을 이어 말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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