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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님의 서재
  • 믿습니까? 믿습니다!
  •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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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1
  • : 1,216
작가의 유쾌한 글투와 날카로운 풍자 덕분에 읽는 내내 웃었다.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라는 부제 때문에 정말이지 각종 미신에 대한 이야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처럼 오해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 미리 일러둔다. 책은 미신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바라본다. 보편적인 시각에서 말하자면 이 책은 인류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 이념, 사상은 물론 탈진실(post-truth)과 음모론에까지 가닿는다. 분신사바나 오컬트 얘기만이 가득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은 인류를 가장 크게 도약시킨 미신인 ‘씨앗을 심으면 먹을 것이 그 자리에 자라날 것이다’에서 시작한다. 수렵 채집이라는 확실한 식량 조달 방법을 포기하고, 계절을 꼬박 기다려도 결과가 불확실한 농경을 시작하게 된 건 당시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농경 사회의 시작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신, 우스운 믿음에 기인한다. 이렇게 바라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신이 아닌가?

점성술과 명리학 같은 것들 말고, 세계를 쥐고 흔드는 거대한 종교마저 ‘프랜차이즈 미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점술가처럼 당장의 미래를 점쳐 주지는 않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내세의 보상인 천국을 약속함으로써 얼레벌레 믿음을 권하는 논리는 같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자본주의는 왜 종교가 아닌가? 우리에게 돈이 가져다 줄 행복을 무조건적으로 약속하는데. 책은 정말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처럼 종교와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작가의 통찰은 특히 빛난다. 작가는 얼핏 보면 절대 하나로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종교적 원리주의자, 날스괴(FSM), 민주주의, 백신회의론자 등의 주제들을 ‘믿음’이라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짜임새 있게 엮어나간다. 거기에는 근현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정서가 있다. 이 많은 주제를 재치있게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에 탄복하게 된다.

작가의 풍자가 가장 두드러진, 블랙 유머로 나를 시종일관 웃게 만들었던 부분은 책의 후반부다. 미국을 호구의 나라라고 소개하며, 그런 강대국에서 횡행하는 얼토당토 않은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개탄하는 허심탄회한 글이 정말이지 너무 웃겼다. 그리고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닌 것까지. 저 사람들 때문에 정말 세계가 망하면 어떡하지. 게다가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스케일은 더 작아서 그 파급력이 미국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우리는 어디에나 있는걸.

뉴스의 권위는 사라지고 대안적 진실이 팽배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런 요지경 같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정신 건강에 조금이라도 더 이로울지.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청난 재치와 통찰과 함께. 인류를 이곳까지 이끌어 온 믿음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분명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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