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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님의 서재
  • 텐 드럭스
  • 토머스 헤이거
  • 15,300원 (10%850)
  • 2020-11-11
  • : 544

내가 만약 산업계에서 일하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제약 회사에 취직하게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토머스 헤이거의 「텐 드럭스」는 내게 아주 좋은 과학 교양서였다. 어떤 면에서는 인문사회 교양서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약물에 대한 생화학적인 배경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역사적인 사건과 그들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토머스 헤이거는 세상을 바꿔놓은 영향력 있는 약물들과 그 역사를 훌륭하게 간추려 소개하고, 더 나아가 제약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력 있게 성찰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그가 건네는 충고이기도 하겠다.


책은 십여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편유도체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약학은 아편의 부작용과 중독성은 없애고, 진통제로서의 효능만 갖춘 약물을 개발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약물도 순기능만을 가질 수는 없기에 인류는 자꾸만 아편유도체의 수를 늘려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약물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약이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지는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마약이 다른 범죄와 비교했을 때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는 약물과 거리가 멀고, 그 중독성과 금단 증상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망치는지 실제로 목격한 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물 중독을 뿌리뽑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알고 나니 확실하게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사회가 약물 중독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편유도체들 말고, 중독성 없이 세상을 구한 약물들도 인상 깊었다. 설파제와 피임약에 얽힌 이야기가 그랬다. 설파제는 페니실린 이전의 항생제로, 전장의 참혹함을 목격한 연구자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약물이다. 피임약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할 기회를 주었다. 두 약물은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하고 있다. 


생명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울림을 받았던 건 단연 단일클론항체를 개발한 쾰러와 밀스테인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고, 선한 마음에 먹먹해졌다. 나 역시 과학은 밀스테인이 지향한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믿기에 그 마음을 저버린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이 일화에 덧붙여 현재 제약 산업계에 팽배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도 크게 공감했다. 약물과 산업, 그리고 인간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 수긍할 수 있었기에 독서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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