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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님의 서재
  • 남극이 부른다
  • 박숭현
  • 15,750원 (10%870)
  • 2020-07-31
  • : 481

나는 아마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 생명과학과 대학생이다. 같은 이공계열이지만 공대에 비해 자연과학대는 학생 수가 적고, 재정도 넉넉하지 않으며, 졸업 후 학계 밖의 선택지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과는 취업의 문이 참 좁은 축에 속하는데, 그런 탓인지 과 친구들끼리 만나게 되면 생명과학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곤 한다.

일단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지만, 랩에 출근을 하면서도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나 하나 먹여 살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서른을 넘기고도 '박사 디펜스...! 조금만 더...!' 하는 학생 신분이면 어쩌나. 연구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자꾸 서늘하게 목덜미를 붙잡는다. 과연 나 같은 우주 먼지가 학계에 남아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아무 것도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데, 망설임 없이 아카데미아를 선택하고 뛰어드는 몇몇 친구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경이롭다.

그런 의미에서 박숭현 박사님이 자신의 연구 경험을 글로 옮긴 「남극이 부른다」는 먼 곳으로부터 전해 온 용기 같았다. 이 책에는 대학원생 시절, 해양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모든 불확실을 딛고 망망대해로 떠나, 세계적인 해양과학자가 돌아온 박숭현 박사님의 연대기가 담겨 있다. 생명과학 못지 않은, 아니 어쩌면 더더욱 인지도가 낮은 해양과학이라는 학문에 자신의 일생을 걸고 뛰어든 사람.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나에게 물결처럼 용기를 가져다 주었다.


책의 1, 2, 3장은 연구 경험과 여러 가지 일화를 다루고 있고, 4장은 지구과학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다. 4장을 읽을 때는 꼭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서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기분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연구가 점점 진행되고 경력이 쌓이면서 멋진 발견을 해 나가는 박사님의 모습도 멋있었지만, 내게 가장 큰 위로와 공감이 되었던 건 역시 1장이다. 비주류를 연구하는 일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또 랭뮤어 교수의 일화를 보며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분야도 파고들다 보면 흥미롭기도 한 일이니, 미리부터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나를 꾸준히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고. 미리 하는 결심은 이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각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인간적 난관과 자연적 난관이 우발적으로 다가올 때마다

이를 헤쳐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인내 그리고 행운이 있었을 따름이다.

박숭현, 남극이 부른다, p.155


목적, 의지, 인내, 행운. 악화된 해황 속에서도 극적으로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일에 대한 회상이 그려진 부분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행운은 준비된 자가 기회를 붙잡는 순간의 다른 말이라고 느꼈다. 좋은 연구를 하는 사람은 많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마침 아라온호가 건조 중이고, 그 쓸모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때가 왔을 때, 그때의 자신에게 늦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두는 사람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많이 자랐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예전에는 그저 멋있어 보이기만 했던 사람들과 일화에서 애환을 느끼게 되다니. 남들이 열심히 사는 이야기는 나를 벅차오르게 만든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유익함을 넘어서서, 과학을 하며 가져야 할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든, 이 책은 분명히 잔잔한 감동과 즐거움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각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인간적 난관과 자연적 난관이 우발적으로 다가올 때마다

이를 헤쳐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인내 그리고 행운이 있었을 따름이다.-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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