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선란 작가를 알게 된 건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읽은 단편 「그림자놀이」를 통해서였다. 짙은 여운에 마음이 한참 수런거렸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져 천선란을 포털에 검색하자, 그가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작품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가 떴다. 나는 그날부터 이 책이 출간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의 단편집 「어떤 물질의 사랑」이 먼저 세상에 나오고, 마침내 「천 개의 파랑」이 내 손에 닿게 되기까지.
사실 작품 소개를 봤을 때는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독자들을 매료시켰는지 쉽게 예상이 되지 않았다. 안락사 예정인 경주마 '투데이'와 로봇 기수 '콜리'의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연대에 대해 말할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경마와 로봇에 무지하고 흥미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투데이와 콜리 둘의 관계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오로지 인간의 즐거움만을 위해 태어나 평생을 오락거리로 소비되다가, 쓸모를 다했다는 이유로 폐기 위기에 놓인 동물과 로봇. 그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축이다.
콜리는 오류로 인해 만들어진 조금 이상한 로봇 기수다. 인간 대신 말을 타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보통의 로봇 기수들과는 달리 콜리는 생각하고, 대화하고, 학습하게끔 만들어졌다. 작중에서 로봇 기수가 경마장에 출현하게 된 배경은 그럴듯해서 더욱 끔찍했다. 기존의 경마에서 말은 무겁고 유약한 인간을 태우고 달리기 때문에 일정 속력 이상으로 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가볍고, 부상의 위험이 없는 로봇 기수를 만들어 경마에 세운다. 로봇 기수를 태운 말은 더 빨리, 더 빨리 달리게 되었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달린 말들의 연골과 관절이 망가지고 닳는 것은 인간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은 철저하게 인간의 쾌락만을 위해 이용되었고, 경주마 투데이는 그렇게 희생된 수많은 말들 중 하나다. 다만 투데이가 다른 말들과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콜리를 만났기 때문이다.
콜리는 경기 도중 자발적으로 낙마한다. 자신의 오랜 파트너인 투데이가 힘겨워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태우고 달리기에 투데이는 너무나 지쳐있었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콜리는 완주해야 한다는 원칙과 고삐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규칙 같은 것들을 모두 저버리고 오직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떨어진다. 하반신이 전부 부서져 자신이 폐기될 운명을 뻔히 알고도 그렇게 했다. 투데이와 함께하며 호흡을 맞춘 시간이 콜리가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인간 아닌 것이 인간성을 획득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가, 곧 인간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을 보고 인간성이라고 말하는 건 인간의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하고 부끄러워져서였다. 콜리가 '인간적'인 로봇이었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콜리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인 나는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은 각오를 감히 인간적이라는 말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 같다.
책 속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보경 일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삶은 보경과 그의 두 딸에게 꾸준히 잔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공통적으로 기술과 사회의 발전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생겼다. 인명 구조에 쓰이는 로봇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정작 소방관들의 방진복 개선은 뒷전이었기에 보경의 남편은 죽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던 생체 적합성 의족 수술에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은혜는 수술을 받지 못한다. 연재는 로봇 개발에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졌으나,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을 마주한 뒤 낙담하고 만다. 어느 것도 셋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셋은 서로에게 이유 없이 미안해하게 되었고, 이내 무언가를 바라기를 포기했으며, 체념은 상처가 곪게 만들었다.
세 사람 사이의 침묵을 깨트리는 건 바로 콜리다. 어느 날 경마장에 들렀던 연재는 폐기 위기에 처한 콜리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린다. 전 재산을 털어 경마장에서 콜리를 사 온 연재는 그 날부터 콜리를 복구하는데 열중한다. 휴머노이드에 깊은 적대감을 품고 있는 보경은 그런 딸이 탐탁지 않지만, 은혜의 '그렇게까지 좋아하던 연재는 처음 보았다'는 말에 곧 수긍한다. 결과적으로 콜리는 세 사람 모두에게 구원이 된다. 그를 두려워했던 보경에게도, 그에게 무관심했던 은혜에게도. 콜리는 영영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셋 사이의 적막을 깨우는 다정한 울림이 되어주었다.
콜리만 이들의 변화의 씨앗이었던 것은 아니다. 불쑥 치고 들어와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재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간 지수가 있다. 연재라는 원석을 알아보고, 연재가 아무리 철벽을 쳐도 기죽지 않고 마침내 그 벽을 허물어버린다. 보경과 연재 사이의 오랜 단절을 깨어줄 단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흘리기도 한다. 나는 세속적이지만 순수하고, 영리하면서 야심 가득한, 자존감 높은 지수가 너무 좋았다. 어쩌면 연재에게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은 콜리가 아니라 지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적을 만드는 인물은 연재와 콜리라고 할 수 있지만, 작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인물은 은혜가 아닐까. 은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장애인인 내가 얼마나 장애인 의제에 대해 무심했는지, 또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작가님의 세심함에 감탄했다. 여러 가지 차별, 그리고 그것의 기원과 대물림에 대한 아주 수준 높은 성찰. 또 우리가 동료 시민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까지. 작가는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짚어나간다.
가난한 사람들, 동물, 장애인. 이처럼 이야기 전반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논의가 녹아들어 있는데 어느 것도 어색하거나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정치적 올바름을 가장하기 위해 억지로 욱여넣은 설정이 아니다. 그저 잔잔히, 주변의 이야기를 비추기만 한다. 그들의 삶을 타자화하거나, 신성시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의 삶에 일어난 어떤 사건이, 소외와 차별의 경험이,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이 담담하지만 힘 있는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잔잔한 물결처럼, 천 개의 파랑波浪으로 여울져 온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P83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P221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P261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P205
슬픔도 배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는데 놓쳤다. 현실의 무게감이 몸을 눌러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몸속에서 흐르지도, 버릴 수도 없는 물로 오래도록 고여 있었다. (중략)
그렇게 계속 몸에 담아두었다. 고여서 비려질 때까지. 끝끝내 썩어 마를 날을 기다리면서.- P278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