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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님의 서재
  • 독립의 오단계
  • 이루카
  • 8,550원 (10%470)
  • 2020-07-27
  • : 22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이루카 작가의 <독립의 오단계>다. <SF8> 드라마 <인간증명>의 원작 소설이 바로 표제작이다. 수록작 '새벽의 은빛 늑대'와 '루나벤더의 귀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즐겁게 읽었다. 짧은 지면 내에서 과학적인 세계관과 복잡하게 얽힌 배경을 급하게 설명하느라 몰입도가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색다른 주제와 그 속에서 빛나는 우정을 퇴색시키지는 않는다. 건강하지도, 부유하지도, 젊지도 않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바깥의 여성들.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어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 그 자체로도 값지다.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다양한 배경 속에서 보여주는 이런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표제작 '독립의 오단계'는 앞선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처럼 드라마화되기에 좋은 구성을 갖고 있다. 이야기는 대부분이 인물들 사이의 대화로 전개되고, 회상을 제외한 주요 사건은 법정에서의 공방전이다. 인공 신경망 네트워크 구축의 권위자인 가혜라는 사고로 아들 가재민을 잃는다. 하지만 가재민의 뇌 조직의 일부를 인공지능과 결합하는 데 성공하고, 로봇의 몸에 가재민을 되살려 낸다. 하나 가혜라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면, 인공지능과 가재민의 의식이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것. 가재민은 자신의 의식과 인공지능을 분리해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가혜라는 이에 크게 분노해 인공지능을 살인 혐의로 기소하고, 이야기는 이 모든 것이 가재민과 인공지능의 자발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가재민의 독립에서 시작해, 인공지능 오단계의 독립으로 끝난다.

이야기의 주된 화두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인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일시해야 하는가이지만, 나는 이 소설이 비단 인간과 기계만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혜라와 가재민,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가재민을 낳은 가혜라는 자신이 가재민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가재민이 자신의 길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학대하였으며,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다. 가재민의 의식과 분리된 인공지능 오단계가 법정에서 내뱉는 최후 변론은 마치 가재민이 가혜라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능력만을 존재 이유로 삼아 주어진 능력과 다르게 살 기회를 박탈하거나 존재의 인지 자체를 사물화하고 그것을 강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계는 인간이 만들어서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세상이 이렇다는 걸 알았다면, 그래서 탄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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