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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동급생의 가방을 들어준다는 것은
고정욱의 저학년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2014년에 출판했지만 2021년에도 많은 초등학교에서 추천도서 목록에 올리고 있다. 목발을 짚는 영택이를 위해 석우가 일년 동안 가방을 들어주는 이야기다. 아마도 어린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를 도우라는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석우가 영택의 가방을 자발적으로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학년 때 둘이 같은 반이 되어 처음 알게 되었고, 새 학년 첫날 같은 동네 산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석우를 지목해서 가방을 들어주게 했다. 석우는 학교 끝나고 축구를 하고 싶지만 가방을 들어주어야 해서 불만이 많다. 가끔 영택이의 엄마에게 선물을 받기는 하지만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2학년 말이 되어 모범 상장을 받으니 양심에 가책이 되어 교장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고 만다. 다음날 갑자기 석우를 영택 반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석우는 영택의 가방을 들어주러 달려간다는 이야기다.
이런 내용은 기쁜 마음으로 장애를 가진 친구를 도우라는 메시지겠지만, 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석우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석우가 원하지 않았고 석우는 일년 내내 힘들어했다. 그것을 영택의 엄마는 임의로 주는 선물로 보상했고, 교장은 모범 상장으로 보상했다. 그런 보상에 석우는 마음만 더 불편해졌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은 학년이 바뀌어 다른 반이 된 석우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임의로 영택의 반으로 옮겼다. 결론적으로 석우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석우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상장 때문에 불편했던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석우가 하교 길에 가방을 들고 가면, 영택의 엄마는 항상 집에 있었다. 꼭 석우가 영택의 가방을 들어주어야 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아무리 2학년 어린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저 이웃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년내내 가방을 들어다 달라는 부탁을 할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사실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거의 지시에 가깝다. 이런 정도로 지속해야 하는 일이라면 계약으로 상호 합의해야 한다. 석우 집은 형편이 어렵다. 가끔 영택의 엄마가 주는 선물이 감지덕지한 형편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일수록 더 계약의 주체로 대우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