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제발트와의 접점은 그의 작품처럼 우연으로 점철됩니다. 이 작가의 독특한 성이 머리에 한 번 박히니 어디서든 이 이름이 튀어나오면 우연을 빌미로 저의 마음은 제발트의 중력으로 끌려갔습니다.
『기억의 유령』을 읽고는 거부할 수 없는 중력에는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지요. 국가의 죄를 스스로 짊어진 이에 독일인이라 한치의 웃음도 허용하지 않을 거 같았는데 의외로 잔잔한 개그가 많았어요. 가장 놀라웠던 점은 W G 제발트는 유대인이 아니란 점입니다. 마치 현대의 한국에 살고 있는 제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만행을 죄스럽게 생각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이 제발트에게 깊고 깊은 공감과 수치심을 가질 수 있게 했을까요.

린 섀런 슈워츠의 서문을 포함해 제발트와의 인터뷰, 에세이, 서평을 하나씩 읽다 보면 베일에 싸여 있는 제발트의 모습이 조금씩 뚜렸해집니다.
문제는 일반 시민이 인간성의 추한 면과 맞닥뜨렸을 때 놀라워해야 할 책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이 속한 문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감응할 책임에 대한 것이니 말이다.
P. 249 l 루스 프랭클린
연기의 고리를 쓴 루스 프랭클린도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님이 강조하는 말에도 작가는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발트는 이 책임의 부름에 성심성의껏 응하고 있던 것이죠.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전쟁 당시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때면, 마치 내가 그 전쟁으로부터 태어난 것만 같고, 전혀 경험해 보지도 않은 그 끔찍한 사건들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그늘에 잠겨 있는 것만 같다.
P. 98 l 공중전과 문학 중에서

제발트가 느끼는 수치심은 유동주 시인의 시와도 닿아 있는 것 같아요. 현실을 바꿀 수 없는 무능력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지식인의 특징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높은 공감 능력은 인간을 탐구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능력이기 때문이죠.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 제발트의 서술 방식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 제발트의 작품이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 단정 지었던 그 글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로 다가옵니다. 『기억의 유령』은 저처럼 제발트의 작품을 읽지 않았으나 읽고 싶은 혹은 읽지 못할 거나 지레 단정 지은 독자에게 매우 권장할만합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부드럽게 만들어 새끼에게 주듯 여러 차례 소화된 글로 제발트의 매력을 계속해서 보여주기 때문이죠. 이미 제발트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작가의 생각과 자란 배경을 알려주는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해줄 거예요.

스스로에게 너무 아쉬운 점은 저의 배경지식이었어요. 수준 높은 평론가, 번역가, 교수님이 제발트를 설명하려 언급하는 작가와 특징, 도시, 스타일 등을 이해하지 못해 제발트의 연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는데 시간을 꽤 많이 보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저만의 스키마가 아주 조금 늘었겠지요.
이 책을 읽고 작가를 알아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개인적 견해에 더 큰 힘이 실렸습니다. 모든 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한 연결점이 하나씩 보이게 되죠. 천재적인 작가의 자질 중 하나는 잊힌 과거의 것을 현대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인 것이죠.
실제로 벗어나지 못하죠. 그런데 사실 저는 별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똑바로 그 모든 상황을 헤쳐나가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말이죠.
P. 112 ㅣ 제발트
윤동주 시인의 거울처럼 저는 W G 제발트를 보고 손으로 발로 거울을 닦아봅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찾기 위해서요. 가능하다면 말이죠.

#문장수집
언어, 제발트는 언어의 힘을 믿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진은? 그것은 불신의 대상이었다.
P. 20 ㅣ 서문
제발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는 이것을 유감으로 여겼다.
P. 33 ㅣ 서문
제발트는 산 사람의 세계와 죽은 사람의 세계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언급한다.
P. 44 ㅣ 서문
소설은 제발트가 우리에게 건네는 열쇠다.
P. 46 ㅣ 서문
끝으로 내가 이들을 선정한 이유는 제발트의 주제를 자신들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에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P. 51 ㅣ 서문
(제발트의) 필치는 베른하르트보다 훨씬 더 가볍고 도구는 더 유연하다. 카프카의 흔적도 있고 이따금 로베르트 발저의 흔적도 보인다.
P. 75 ㅣ 팀 파크스
제발트 문학이 지닌 유혹의 요소들은 어리석은 행동들이 부르는 친밀함과 달리 파괴적이지 않은 친밀함을 성취하고자 한다. 사냥꾼의 칼처럼 파괴적이고 직접적이고 우연한 만남과는 다른 무엇,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장 분별 있는 광기"다.
P. 78 ㅣ 팀 파크스
더 원시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늘 망자의 존재가 함께합니다.
P. 87 ㅣ 제발트
미술관에 가서 16세기나 18세기에 누군가가 그린 훌륭한 그림들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이탈합니다. 그렇게 시간의 진행에서 이탈할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건 구원의 일종입니다.
P. 90 ㅣ 제발트
저도 그 역사의 짐을 물려받았어요. 좋든 싫든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P. 103 ㅣ 제발트
하지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는 부분의 밀도는 상당히 높아집니다. 이로 말미암은 무게가 한번 짓누르기 시작하면 우리를 침몰시킵니다. 그런 종류의 기억은 정서적으로 짐이 되는 경향이 있죠.
P. 109 ㅣ 제발트
실제로 벗어나지 못하죠. 그런데 사실 저는 별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똑바로 그 모든 상황을 헤쳐나가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말이죠.
P. 112 ㅣ 제발트
제가 확보한 은둔의 시간은 굉장히 소중한 무엇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제 책이 잊힐 때까지 모든 관련 활동을 중단하고 떠나자고요. 그럴 경우 어쩌면 다시 그 헛간에 들어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겠죠.
P. 119 ㅣ 제발트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하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거든요. 파시스트 지지자들은 아주 오래 삽니다.
P. 130 ㅣ 제발트
저는 독일어에 애착이 있어요. 그리고 이 애착에는 그 상의 차원이 있는 듯해요.
P. 133 ㅣ 제발트
따라서 책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둘 때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소재로 그 관심사를 요약해 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P. 154 ㅣ 제발트
어떤 형태의 자연이든 제 글은 자연을 연구하는 일이니까요. (중략) 그래서 저는 과학자들의 글을 읽는 걸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항상 영감의 원천이 되더군요.
P. 155 ㅣ 제발트
저는 어떤 이유로든 열외로 취급받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사람들이 일단 입을 열면 다른 데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제게 해 주는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를 느꼈어요.
P. 160 ㅣ 제발트
하지만 걷다 보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P. 178 ㅣ 제발트
전례가 없는 무언가를 쓰는 방향으로 머리를 움직이려면 자료들의 종류가 각기 달라야 합니다. 저는 글쓰기를 그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P. 179 ㅣ 제발트
탐색은 이렇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전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이죠.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되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면, 이를 통해 다른 걸 또 알게 되는 일 말입니다.
P. 180 ㅣ 제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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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반 시민이 인간성의 추한 면과 맞닥뜨렸을 때 놀라워해야 할 책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이 속한 문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감응할 책임에 대한 것이니 말이다.
P. 249 l 루스 프랭클린
- P249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전쟁 당시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때면, 마치 내가 그 전쟁으로부터 태어난 것만 같고, 전혀 경험해 보지도 않은 그 끔찍한 사건들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그늘에 잠겨 있는 것만 같다.
P. 98 l 공중전과 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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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벗어나지 못하죠. 그런데 사실 저는 별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똑바로 그 모든 상황을 헤쳐나가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말이죠.
P. 112 ㅣ 제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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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역사의 짐을 물려받았어요. 좋든 싫든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P. 103 ㅣ 제발트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