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무려 1400 페이지입니다. 너무 두꺼워서 읽기에 불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전선 중의 하나였던 태평양 전쟁을 자세히 서술한 책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일본 제국 패망사를 다룬 책이므로 일본 관점에서 써야 했겠지만,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서 아시아를 독립 시킨다는 이론인 대동아 공영권을 설명하면서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동남아 국가들을 독립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제국주의 기반의 식민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국(버마), 프랑스(인도차이나), 네덜란드(동인도), 미국(필리핀)을 보면서 자신들이 그들을 대체하기를 바랬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중국과 인도차이나를 점령하는데 미국이 왜 이렇게 난리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모두 제국주의 국가이고, 자기들도 모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왜 일본은 안되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깐요.
일본의 아시아 국가의 독립이 아니고, 전쟁이 필요한 자원을 식민지에서 조달하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동남아 국가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아시아의 단결을 도모하자고 하면서 각 국가는 독립국이라고 선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때는 미국에게 연패하면서 점차 승세가 기울여져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처음부터 동남아시아로 진출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관동군은 중국 화북 지역까지 진출하면서 중국을 점령할 야욕을 내세웁니다. 독일군이 짧은 시간안에 프랑스군을 격파했듯이 일본군은 중국군에게 연승을 하면서 쉽게 중국을 점령할 줄 알았지만, 중국은 생각보다 너무 광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였습니다. 패배하고 후퇴해도 다시 군대를 모아서 일본군에게 대항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39년까지 일본은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은 1939년 5월 노몬한 지역에서 소련군과 충돌합니다. 관동군은 군국주의 일본의 대명사이면서 가장 최악의 악질적인 군대 중의 하나입니다. 생체 실험을 일삼던 731부대를 운영했고, 온갖 음모, 공작을 꾸며대면서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를 자행했습니다. 하지만, 주코프가 이끄는 제57저격군단에게 박살이 납니다. 이후 독일군의 모스크바 공세 시 주코프는 공세를 막아내어 소련의 영웅으로 불리웁니다. 모스크바 광장에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만약,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 일본이 소련을 침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확실한 것은 소련의 극동군이 독일 방어전에 투입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주코프가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서부 전선으로 이동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소련에게 엄청난 부담이었겠죠.
프랑스가 독일에게 무너진 후 괴뢰정권인 비시 정부가 들어섭니다. 이런 정부가 해외 식민지에 관리할 여력이 없었겠죠. 이때 일본은 프랑스 식민지인 인도차이나(현재의 베트남)을 점령합니다. 일본이 만주를 침공할 때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던 미국은 일본이 중국 화북 지역을 점령하니 일본을 비난하고, 원유 공급을 중단합니다.
결국,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를 차지하기 위해 남방 작전을 계획합니다.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있는 영국,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별로 문제가 아니었지만, 필리핀을 점령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하지 않고는 동남아 진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진주만 공습을 준비합니다.
일본군은 싱가포르에 주둔한 영국군 함대,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 있는 미군 극동항공대, 진주만에 있는 미군 태평양 함대를 동시에 공격할 계획을 세웁니다. 일본군의 계획에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본군 연합 함대 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제독도 몇 개월 동안은 미군에 승리할 수 있지만, 장기로 전쟁이 지속된다면 미군에게 진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자만심은 엄청났습니다. 미국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면, 일본을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고, 태평양을 포기하거나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에 일본군 항모 모함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진주만 기지를 폭격합니다. 동시에 말레이 반도에 상륙해서 싱가포르로 남하합니다. 또한, 대만 공군 기지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필리핀 루손섬 중앙부에 위치한 미군 클라크 기지를 폭격합니다.
일본군은 진주만 폭격 시 실수를 저지릅니다. 18척의 함정을 격침 또는 파손시키고, 항공기 188대를 파괴했지만, 유류 저장 탱크와 잠수함 대피소를 폭파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미군 항공 모함은 진주만 기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주둔했던 영국 극동 함대와 필리핀에 있던 미군 태평양 항공대를 박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동인도 자바섬에 배치되어 있던 영국, 네덜란드, 미국 연합 해군도 무너뜨립니다. 일본의 남방작전은 성공했고, 남은 곳은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서 도망간 호주 뿐이었습니다.
일본의 자만심은 하늘 끝까지 도달했습니다. 진주만 공격에서 미군 항공모함을 부수지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해 미군 대규모 해군 병력을 미드웨이 지역으로 유인해서 격파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일본이 동남아에서 영국, 네덜란드, 미국 해군을 무찌른 것은 그 지역의 미국 공군 병력을 먼저 제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항모가 아니고, 함대전을 통한 전투에서 승리를 한 것이었죠.
일본의 계획은 진주만 처럼 미드웨이 지역을 급습하고, 진주만에서 미군 항모 선단이 지원을 오면 급습 부대 뒤에 위치한 일본군 항모 선단이 미군 항모를 격침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일본군 암호 해독을 통해서 일본의 계획을 사전에 파악합니다. 그리고, 바로 미드웨이 항공 기지를 강화하고, 항공기 배치를 증가시켰습니다. 미군 항모는 일본군 항모에 비해 1대가 적었지만, 진주만 이후 미군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이 된 니미츠 제독은 불침 항모인 지상 항공기 기지를 활용하면, 일본군 항모 선단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일본군은 미군 항모를 2대로 봤지만, 미군은 엄청난 보수 능력을 통해 항모 요크 타운을 수리해서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시킬 수 있었습니다.
1942년 6월 4일 일본군은 계획대로 미드웨이 공군 기지를 폭격하지만, 강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공군 기지에서 출격한 미군 항공기들이 일본군 항모를 위협하자 공군 기지에 대한 2차 공격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공군 기지 폭격을 위한 소열탄과 항모를 공격하기 위한 어뢰, 폭탄은 다르기 때문에 항모에서 출격하기 전에 교체를 해야 합니다. 일본군은 미군 항모가 아직 도착할 시간은 안 되었다고 판단해서 항공기들을 항모에 착륙시키고, 다시 소열탄을 장착합니다. 그런데, 일본군 정찰기가 미군 항모 선단을 발견합니다. 일본군은 기겁을 하고, 다시 어뢰를 장착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일본군 항공기들이 모두 항모에 착륙해 있을 때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군 항모를 발견하고, 공격을 합니다.
사실 미군 어뢰기 편대와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에서 동시에 출격했는데, 어뢰기 편대는 일본군 항모 위치로 바로 왔기 때문에 일본군 제로기와 조우했고,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군 미드웨이 해군 기지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제로기들은 계속 방어를 담당했고, 미군 어뢰기 편대까지 공격한 후에 연료와 무기 재보급을 위해 항모에 착륙해야만 했습니다..
이때 미드웨이 해전의 운명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단, 몇 분동안 미군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일본군 항모 4척을 격침시킵니다. 일본군은 방어할 제로기가 없었고, 연료와 무기 재보급을 위해 한 곳에 꺼내서 모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타격이 컸습니다. 미군 폭탄 중량도 무거워서 갑판을 뚫고, 격납고까지 내려가서 폭발을 했습니다.
미국에 비해 산업 역량이 떨어지는 일본에게 4척의 항모 손실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전함과 순양함 위주의 해전을 선호했는데, 항모에서 출격하는 항공기에게 치명적으로 약했습니다. 항모 전력이 떨어지므로 일본군은 대규모 선단의 대양 전투를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일본군 제로기의 성능에 뒤쳐졌던 미군 전투기들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미군은 공중에서의 우위를 차지합니다. 이로써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점차 낮아집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전략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점령을 한 섬들의 공군 기지를 방어하면서 인근 해안에서의 함대전에서 승리를 해야 했습니다.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나 섬에 공군 기지를 짓기 시작합니다. 미군이 태평양을 못 넘어오도록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섬, 뉴 브리튼 섬의 라바울 기지, 과달카나 섬 기지를 중요 전략 거점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병 부대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기지 건설이 늦어졌고, 미군이 상륙해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핸더슨 공군 기지를 건설합니다. 그리고, 항공기들을 발바쁘게 배치하죠.
일본군은 다시 과달카나를 빼앗기 위해 몇 차례의 상륙전과 인근 바다에서의 해전을 시도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군의 참패로 끝납니다.
미군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맥아더는 뉴기니섬, 뉴브리튼섬을 거쳐 필리핀으로 진격하고,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 섬들을 점령하면서 사이판 섬으로 향합니다.
항모가 부족하니 전함 위주로 가봤자 미군 항모의 급강하 폭격기, 어뢰기에 의해 격침될 것이니 할 수 있는 것은 섬에서 틀어 막혀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용기인지, 객기인지 아니면 무식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의미없는 반자이를 외치면서 죽어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한심합니다. 전략적인 후퇴와 재집결을 통해 휴전을 도모하는 것이 일본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었지만, 군부가 장악한 일본 정부는 오로지 결사 항전만 외쳤습니다.
1944년 7월 9일 미군은 사이판 섬을 점령하고, 1944년 12월 15일 필리핀 레이테만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1945년 3월 27일 미군은 이오섬 점령을 하면서 점차 일본 본토에 다가섭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이 오키나와 섬을 마주하는데,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겠다는 비장함을 드러내는 일본군을 마주합니다.
죽겠다고 덤비는 적에게 죽이겠다고 덤비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5년 7월 2일 오키나와 섬의 일본군은 무너집니다. 하지만, 3개월을 버티면서 미군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미군은 일본 본토를 상륙할 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까 걱정했습니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공군 작전은 오로지 가미가제 밖에 없었고, 오키나와를 지원하기 위해 출항한 일본군 전함, 순양함, 구축함들도 미군에게 격침 당했기 때문에 일본군은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힘이 없었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오로지 깡만 남아서 휴전을 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로 우둔했습니다.
미군 폭격기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마음대로 일본 영공을 날라다녔기 때문에 미군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됩니다. 1945년 8월 8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 폭판이 투하됩니다. 많은 민간들이 방사선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죄인은 일본군 군부였습니다.
일본이 점령한 한치의 땅도 뺏기지 않겠다는, 아무 의미도 없는 신념에 매몰되어서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토에 상륙한 미군을 무찌르겠다는 일념을 불살랐던 일본 군부로 인해 일본은 두 번의 원자 폭탄 피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원자 폭탄 공격이 인도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731대 부대의 생체 실험, 난징 30만 대학살, 100인 연속 머리 자르기 등의 일본군 잔혹 행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제국이 왜 패망했는지를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국력을 키운 일본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들이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우방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우리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동의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오늘의 우방이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여러 지표를 조사해서 발표한 2025년 강대국 순위에서 한국은 전세계 6위에 등극했습니다. 프랑스는 7위, 일본은 8위였습니다. 그리고, 2025년 국방력 순위에서 한국은 전세계 5위에 등극했습니다. 우리보다 강한 국방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관된 국방력 강화와 정치적 안정이 한국을 지정학적 위기에서 구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의 한 축이었던 태평양 전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일전에 읽었던 <중일 전쟁>과 함께 이 책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일 전쟁>을 쓴 권성욱 작가가 <일본제국 패망사>를 감수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태평양 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군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톨런드는 일본은 패망 후 25년 후 다시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존중과 칭찬받는 국가가 되었다고 저술합니다. 마치 이처럼 위대한 국가가 왜 전쟁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일본이 실수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됩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한론,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의 식민지화, 독도 영토 주장, 역사 왜곡 등 그들의 침략적이고, 야만적인 전쟁에 대한 민족적 습성,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을 일삼는 치졸한 행태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제가 존 톨런드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일본과 협력하면서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무조건적이고, 처절한 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다시 마음속에 새깁니다.
2025.07.29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