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위하여
김민성 2020/08/0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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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배우는 시간
-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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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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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엄마와 등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차선을 틀려고 하던 중에 엄마가 갑자기 건강보험공단을 들렀다 가자고 했다. '사전연명의료연향서'를 신청해야 한다고. 떨떠름한 내 표정과 등산복 차림이 걸렸는지 엄마는 다음에 잘 차려입고 혼자 가겠다며 마음을 바꿨다.
평상시에 엄마가 하는 말과 행동을 봤을 때 엄마가 크게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엄마가 막상 연명치료중단신청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겪어야 할 그 순간에 속절없이 엄마를 보내야 할 나를 생각하니 눈물부터 났다. 남겨질 사람들 생각은 안 해주나? 우리 엄마지만 참 이기적이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쳤다. 괜한 오기에 그럼 나도 같이 신청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봤지만 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에게 죽음은 아득하고 멀었다. 그랬던 죽음은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성큼성큼 다가온다. 부모님의 부재부터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나의 죽음까지. 이왕 죽는 거라면 잘 죽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깔끔하게. 그러나 조금씩 죽음을 접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이나 평온하게 죽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건강을 유지하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좋은 삶이라는 목표를 위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되어버린 실태, 소생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행해지는 끝없는 치료들, 그 치료를 이어나가지 않았을 때 남은 가족들의 죄책감과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은 이런 현실을 냉철하게 꼬집고 설명한다.
81p.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한 거예요.
103p. 병원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224p. 나는 심폐소생술의 성공률이 일반적인 통념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 그것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사망선고 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마치 뭔가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사망한 것처럼 간주하는 현실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것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저자의 아버지가 편찮으셔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일화가 인상깊었다. 엄마는 남편인 아버지에게 자꾸만 음식을 억지로 떠넣어줬다. 의사이자 딸인 저자는 억지로 음식을 먹다가 아버지가 흡인폐렴에 걸릴 수 있어 엄마를 말린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안 먹어서야 어떻게 몸이 낫겠냐고 되묻는다. "뭐가 낫는다는 건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쯤 되면 음식을 먹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주변 사람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이 인정해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미래의 나를 떠올렸다. 앙상하게 말라가 병상에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을 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내가 더 곁에 두고 싶은 욕심에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왠지 불경하고 두려운 일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리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나 역시 그랬을 것이고. 그러나 사전연명의료연향서를 작성한다는 엄마의 말,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가족들이 내 손길도 닿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의사들에 둘러싸여 죽는 것도 원하지 않고 나 역시도 그렇게 죽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식조차 없어 죽음을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없고 누군가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늦지 않게 나의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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