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에 가면 숭례문학당이 있다. 숭례문(남대문) 옆에 있어 숭례문학당이라는 그곳은 함께의 가치로 ‘함께 읽고 쓰기’를 실천하는 독서 공동체이다. 최근, 그곳에서 읽고 쓰는 이들 몇몇이 『힘이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섬드레, 2025)를 펴냈다. 이 책은 『서평 쓰기, 저만 어려운가요?』(엑스북스, 2024)의 저자 김민영, 린롄언의 『숲속 나무가 쓰러졌어요』(섬드레, 2024)를 번역한 김예원 저자 등 10명이 함께 쓴 그림책 에세이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났다.
『힘이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는 10명의 저자 각자에게 한 권의 그림책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삶에서 어떤 힘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은 선택하는 힘, 깨고 나오는 힘, 일상을 기억하는 힘, 선을 긋는 힘, 소심함이라는 힘, 용기 내는 힘, 홀로 서는 힘, 뛰어오를 힘, 엄마라는 힘, 질문하는 힘을 이야기하는 10권의 인생 그림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그림책까지 총 70권이 소개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길이라고요!"
‘선택하는 힘’, 13쪽
공저자 김민영은 그림책의 고전이라 불리는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을 불러온다. 그는 ‘논객’, ‘반항아’라는 수식어가 붙은, ‘프레드릭’의 눈빛으로 노래하던 신해철의 세계는 점수로 평가받는 학교와 아이들로부터 먼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누군가와 달라도 괜찮다고, 들쥐 가족과는 다른 삶을 지향하는 ‘프레드릭’을 통해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사회가 들이대는 잣대에 모범생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게 아니라고. 선택의 힘을 이야기한다.
오수민 저자는 인생 그림책으로 『나는 소심해요』(엘로디 페로탱, 이마주, 2019)를 소개한다. 소심하다는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뜻으로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소심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수십 번의 망설임을 만난다고 한다. 소심했던 저자는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주인은 타인이 되기 십상이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소심함은 병이 아니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저자에게 힘을 주었다고. 저자는 소심했던 자신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었다고 밝힌다.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내 삶에 단점인 것만 같은 그 무엇이 때로 내 삶의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말한다. “ ‘소심함이라는 힘’은 생각보다 세다”(89쪽)고.
저자들은 힘들었던 삶의 어느 시간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그림책을 읽으며 위로받고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조곤조곤 담담하게 펼쳐 놓는 저자들의 인생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그저 그들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겁도 걱정도 많아”(38쪽) 한 걸음을 내딛기가 여전히 버거운 이도 있을테고, 아직 부엉이를 만나러 가는 “과정을 즐기 줄 아는 여유”(50쪽)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심해도 괜찮고, 때로 “나 만의 선 긋기”(68쪽)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는 무례함이 아니라 “서로의 ‘선’을 존중해 주는 것”(69쪽)일 뿐이라고. 이처럼 한 권의 그림책이 저자들에게 힘이 되었듯 그들이 담담히 들려 주는 인생 이야기는 어떤 독자에게는 위안의 힘으로 자리 할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한 편의 그림책 소개가 끝날 때마다 생각거리를 던진다. 나는 이랬는데 당신은 어떠냐고 질문한다. 독자들은 잠시 멈추고 사유한다. 그림책의 힘에 생각의 힘이 얹어지는 순간이다. 이는 이 그림책 에세이를 읽으면서 생각하지 않은 부케이다. 또한 저자마다 자신이 소개한 그림책과 함께 읽고 생각해 보면 좋을 그림책을 6권씩 보탠다. 주제에 따라 어떤 그림책을 보면 좋을지 고민하는 독자라면 큰 자산이 될 목록이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 곳간에 식량을 쌓아 놓듯 그림책 목록 곳간이 든든하게 채워질 테니.
필자는 책을 읽는 도중 이미 마음속에서 『힘이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의 한 꼭지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한 꼭지가 아니라 10꼭지였을 게다. 저자마다 이야기하는 그림책과 그 상황에 그랬지,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라며 끄덕였으니. 공감하고 공감 받는 에세이, 읽기를 넘어 쓰는 자의 출발선에 서게 할 수도(이 책 참 신기한 힘을 가졌네!).
다정한 위로가 필요한가.
그림책의 힘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그림책 에세이를 권한다. 위로와 용기를 넘어 어쩌면 필자처럼 또 다른 『힘이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의 한 꼭지를 쓰고 있을 수도. 누구나 가슴에 힘이 되는 그림책 한 권 품고 있을 테니.
당신은 어떤 힘을 이야기 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