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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중 무엇이 더 편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글이었다. 편지 쓰기를 좋아하고 뭔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는 끄적거리고 있는 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일기를 썼고, 마음 통하는 친구와 쪽지 편지로 대화를 했다. 친구 관계는 나 포함 3명 이상인 적이 없었다. 내향성이 강한 나는 새 학기는 늘 불안과 긴장 초조 상태였다. 새로운 짝이 내 이름을 물어봐 주기 전에는 입을 열지 못했다(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짝은 빠른 시일 안에 내 이름을 먼저 물어봐 주었다). 나는 내향적이었지만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늘 글쓰기에 목말라 끼적였던 것이나 내 글이 주절주절 수다스러운 것을 보면.
<내향적이지만 할 말은 많아서>(엑스북스, 2022)는 13년 차 블로거 ‘나무와 열매’로 활동하는 김슬기 저자의 네 번째 책이다. 그는 자신이 왜 블로그 글쓰기에 빠졌는지, 새로운 도전과 블로그 이웃들과의 우정에 관한 내향형 인간의 자아실현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내향적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조용한 발산형 인간이었던 그는 블로그라는 자신만의 집을 짓고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는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고, 관심받고 싶지만 관심받고 싶지 않은 두 개의 마음을 모두 존중”(8쪽) 해주는 공간이 블로그며, 블로그는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적당히 폐쇄적이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9쪽) 개방성을 지닌 공간이라 소개한다.
블로그는 내 안에 가둬 두었던 이야기를 안전하게 날려 버릴 수 있는 넓고도 좁은 세계였다.
-24~25쪽
이처럼 책은 저자가 왜 블로그 글쓰기에 천착했는지 잘 드러낸다. SNS에서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은 여러 곳이다. 수많은 플랫폼 중 왜 하필 블로그 글쓰기였을까. 저자는 사진 한 장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 대단하지 않아도 충분히 특별한 자신의 일상, 그 일상 너머 혹은 그 아래에서 건져 낸 시간과 맥락들을 기록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 전한다. 나 또한 블로그를 한다.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나는 아카이브, 즉 기록 저장고의 역할로 좋아하는 시를 올리고 책을 읽고 그림책을 보고 오늘처럼 지극히 사적인 책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누군가 와서 들어주기도 하고, 조용히 읽고 가기도 한다. 그러다 공감을 누르기도 댓글을 남기기도 하면서. 저자가 말하는 적당히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공간, 폐쇄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가지면서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선택할 수 있는 세계가 블로그다. 그래서 편하기도 하고 적당한 긴장감으로 마음을 다하기도 한다. 글이 쌓여 갈수록 블로그의 색깔, ‘하루서가’라는 나만의 인人 무늬가 그려지기도 한다.
블로그는 또 다른 ‘자기만의 방’이다. 저자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에서 글 쓰는 김슬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엄마도 엄마 아닌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반드시 필요”(133쪽) 하다고, 엄마가 엄마됨을 힘들다 고백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모성이데올로기로 팽배해 있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고 한다. 산후 우울증의 수렁에서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어들었던 저자. 작지만 책이 있는 공간이 저자에게 구원이었듯 블로그는 김슬기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 자기만의 방이었다. “삶이 글이 되는 사람으로, 글이 삶이 되는 사람”(156쭉)으로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저자. 그는 이미 블로그라는 자기만의 방에서 김슬기라는 인 무늬를 그리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블로그 글쓰기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쉽게 들려준다. 해서 블로그 글쓰기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실용서로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부록으로 실린 ‘블로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Q&A’는 본캐에 버금가는 부캐 정도라고 해야 할까. 블로거들이 궁금할 만한 핵심 질문과 답으로 본문 끝에 덧붙이는 기록의 의미를 넘어 유용하다.
블로그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폐쇄성과 개방성이 공존하는 곳이라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립이 아닌 고독이 필요하다. 블로그에 홀로 글을 쓸 때는 충분히 고독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나면 이웃 간의 소통으로 고립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웃이 있는 글, 독자가 있는 글은 변화가 따른다. 당신도 내향적이지만 할 말이 많은가. 저자가 고백하듯 들려주는 블로그 글쓰기의 좌충우돌 자아실현기를 들어보면 어떨지. 당신의 내향성 아래 눌려있는 언어의 구슬이 블로그라는 자기만의 방에서 꿰어져 보배가 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