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죽어버린 진실을 드러내는 일
<상당한 위험-글쓰기에 대하여>(미셀 푸코, 허경 옮김, 그린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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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글쓰기라는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조금은 위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p.19
상당한 위험, 무엇이 위험하다는 건가. 그것도 상당하다니,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건가. 제목에서 오는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책장을 넘겨야 했다. <상당한 위험>은 1968년 철학자 미셀 푸코와 문학 비평가 클로드 본푸아의 대담을 통해 푸코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푸코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양립 불가능성, 즉 말하기의 즐거움을 안다면 글쓰기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말을 글로 옮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비추기도 한다. 이 책 제목, <상당한 위험>은 여기서 발화한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해 줄 어떤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실현됩니다. 내가 하나의 연구, 한 권의 책, 또는 또 다른 무엇이든, 어떤 것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바로 그 움직임 자체 안에서만,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p.33
푸코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쓰는 행위 안에서 자신이 증명해야 할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독자는 자신의 글쓰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이라는 것을 끄적일까. 글쓰기를 하면서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나, 진실을 만났다고 하면 될까. 푸코가 말하는 죽어버린 진실을 드러내는 일, 내게 글쓰기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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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은 글쓰기라는 절개切開 자체를 통해, 죽어 버린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내 글쓰기는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또는 삶으로부터 죽음으로의 옮겨 가는 축이 아닌, 죽음으로부터 진실로 또는 진실로부터 죽음으로 옮겨 가는 축 속에 존재합니다.
p.32
푸코는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삶의 잃어버린 기미가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글쓰기는 진실의 세심한 펼쳐짐. 글쓰기는 그러한 장場이어야 하고, 도구여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내 삶의 미세한 흔적들을 종이 위에 쌓아 놓는 일, "소란스러운 삶을 문자들로 이루어진 불변의 소란스러움 속으로 서서히 흡수"(p.53) 시키려는 시도이지만 삶은 결코 종잇장 위에서 조용하지 않다는 것도 진실이다. 문자화된 삶은 종잇장 위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 밖으로 펼쳐지고 증식된다. 이에 푸코는 글쓰기는 남겨지고 숨겨질 무엇인가를 묘사하고 보여주며 드러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환희'라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삼삼한 놀이가 아니다.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게 글쓰기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들은 이 고통스러움을 기꺼이 즐긴다. 글쓰기의 의무에서 따르는 고통에 복종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즐거움'(p.55)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가 지닌 나 자신의 고유의 얼굴을 얼마나 잃고 있을까. 아니 고유가 아닌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그 진부함을 얼마나 깨고 있는 것일까. 내 고유의 실존을 잃어버리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낯선 것으로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내 안의 진실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나의 실존, 본질이라 믿고 있던 그 허구를 깨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 진실이라 믿고 있는 죽어버린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상당한 위험이 나를 잠식할 수도 있다. 잠식 당하기 전, 푸코가 전하는 <상당한 위험>을 먼저 만나보길 권한다. 죽어버린 내 안의 진실을 만날 수도.
※ 아주 사적인 책 읽기였습니다. <상당한 위험>이 궁금한 분들은 꼭 책으로 만나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