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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님의 서재
  •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 11,700원 (10%650)
  • 2013-10-10
  • : 5,270
미국집 천장에는 형광등이 없고, 화장실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단 사실을 몰랐다. 출국하기 몇 주 전에 리징오피스 직원과 이메일로 주고받아 계약해둔 아파트에 도착하고 나서야 집이 왜이리 어둡냐부터 시작해, 여긴 다른 나라라는걸 알게되었다.

내가 1년이란 시간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보낸 뒤 우리 엄마는 나의 아기를 봐주시러 미국에 오셨다. 영어도, 운전도 못하는 우리 엄마에게 미국은 그냥 산골 오지보다 더 지독하게 외로운 곳이었다. 딸이 공부하러 차를 몰고 가버리고 나면 엄마는 아기랑 둘이 집을 지켰다. 내가 오후 늦 게 돌아와 함께 장보러 가는 시간이 엄마의 외출/ 미국구경/ 레저활동이었다. 홀푸드에서 온전한 생선을 보고 반가워하며 나더러 한마리 주문해달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던 엄마. 무를 썰어 넣고 간장에 졸여 식탁에 올리며 한국 그 맛은 안난다며 웃던 엄마.. ˝센 아주머니의 집˝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전화를 받고 베란다 쪽에 엎드려 울고 있던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몰라 대한항공 왕복편 항공권만 예약해드렸다. 교수들에게 얘기하면 기말고사쯤 아무 상관없었을텐데.. 난 왜 엄마를 혼자 보냈을까. 비행기 안에서 울다 쉬다 하셨을거다. 줌파 라히리 글의 섬세하고 정확한 감정 진단이 과하지도 않고 딱 우아하고 그랬다.

˝섹시˝도 좋았고, ˝일시적인 문제˝, ˝진짜 경비원˝도 좋았다.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내가 한번쯤 느껴봤던 감정같고, 인물들이 다 친구같고, 뒷 이야기가 있다면 또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어지는 단편들이었다.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때˝를 읽을 때는 영국에 연수받을때 알게된 파키스탄 출신 박사님이 떠올랐다. 일주일 연수를 마치고 만찬자리에서 내가 우리 직장에서 박사들 많이 뽑으니 한국으로 오지 그러냐는 말을 장난 반 이상 가볍게 말했을때 사람들은 한국 날씨가 어떻냐 등 가벼운 관심을 보였다. 말없이 식사하던 그 사람은 갑자기 ˝종교적 자유는 어떻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좀 불쾌한게 공격이나 모욕받은 기분이 좀 들었다. 한국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다 있고 안싸우고 잘 산다 라고 대충 답했는데 솔직히 왜 묻는지 잘 이해가 안갔다. 에구, 파키스탄이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몰랐다. 나의 무식한 대답에도 딱딱하지만 예의바르게 올드보이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수줍게 얘기했던 그 아저씨가 꼭 피르자다씨 같단 생각이 들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재미난 책을 접하게 되어 행운이다. 추천해준 지인이 새삼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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