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그의 일본춤 이야기가 여자로 하여금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그의 지식이 모처럼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었다고나 해야 할 처지였지만, 역시 시마무라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서양무용 취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따라서 자신의 무덤덤한 여수 어린 한마디가 여자의 생활 한가운데 급소를 찔렀다고 느끼자, 여자를 속이고 말았군 하고 뒤가 켕길 정도였는데,
"감상을 써두는 거겠지?"
"감상 따윈 쓰지 않아요.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등장인물들 이름과 그들의 관계 정도예요."
"그런걸 기록해 놓은들 무슨 소용 있나?"
"소용없죠"
"헛수고야"
"그래요"하고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게 대답했으나 물끄러미 시마무라를 응시했다.
전혀 헛수고라고 시마무라가 왠지 한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 먹은 시골 게이샤의 샤미센쯤이야 들어보나 마나 뻔하다, 객실인데도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켜고 있질 않나, 나 자신이 산에서 느끼는 감상에 불과하다, 라고 시마무라는 생각하려 애썼다. 고마코는 일부러 구절을 단조롭게 읽어내리기도 하고, 여기는 천천히, 성가시다며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신들린 듯 소리가 높아지자, 발목 소리가 얼마만큼 강하고 맑게 울리나 싶어 시마무라는 무서워져서 허세를 부리듯 팔베개를 하고 드러눕고 말았다.
간진초가 끝나자 시마무라는 겨우 숨을 돌리고 아아, 이 여자는 내게 반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이 또한 왠지 처량했다.
<이런 날은 소리가 달라요>하고 눈 온 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고마코가 말한 적이 있었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극장 벽도 없고 청중도 없고 도시의 먼지도 없어, 소리는 다만 깨끗한 겨울 아침을 맑게 지나며 멀리 눈 쌓인 산들까지 곧바로 울려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봄세" 처녀에게 말을 남기고 기차에서 내렸다.
시마무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더욱 여자와 헤어지고 가는 길임을 실감했다.
두 사람이 그저 우연히 합승한 사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남자는 행상인쯤 되리라.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샤미센 발목이 든 통이며 겉옷이며, 무엇이건 가져와서 그의 방에 두고 가길 좋아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거대한 오로라처럼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적시며 흘러 마치 땅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고요하고 차가운 쓸쓸함과 동시에 뭔가 요염한 경이로움을 띠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