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wishkah09님의 서재
  • 사람입니다, 고객님
  • 김관욱
  • 18,000원 (10%1,000)
  • 2022-01-20
  • : 1,240

‘아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

‘아 맞다 책이 지금 나왔지’

‘아 내가 왜 이 얘기를 이제야 알았을까!’

‘아 맞다 책이 지금 나왔지’

‘아 이걸 3년 전에 알았더라면’

‘아 맞다 이 책이 지금 나왔지’

열댓 번을 이러면서 읽었다. 그만큼 꼭 필요했고 눈물 나게 고마운 연구였다.

 

3년 전 해고 위기로 만나 소박한 노동조합을 해오고 있는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을 이해하기에 내게는 어려웠던 많은 부분을 꽤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양반들 왜 이렇게 자주 아프지? 별거 아닌 일에 왜 편 갈라 싸우지? 인센 몇만원이 이렇게 심각할 일인가? 하루종일 말하는 직업인데 술자리에서도 또 이렇게 말을 많이? 아니 이렇게 간식을 쌓아두고 먹는다고? 어느 집단보다 강력한 술자리..' 등등 

책에 나오는 얘기를 그들과 나눠보니 그들 스스로에게도 이 책은 자신의 일과 삶을 이해하는데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오랫동안 흡연, 중독, 감정노동과 건강 등을 연구해 온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콜센터 노동자들을 만나고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왜 콜센터 상담사의 흡연율이 다른 직종의 여성노동자에 비해 월등하게 높을까”하는 의문에서 연구를 시작해 50년 전 구로공단 공순이로부터 지금 구로디지털단지 콜순이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 하는 질문 앞에 탄식, 그러나 ‘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p.12) 누군가 “왜 콜센터 인류학 책을 쓰려고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가 지고 싶지 않은 대상은 폭언을 하는 고객도, 강압적인 상사도, 외면하는 동료들도 아니다. 이러한 개인들을 점차 확산하게 만드는 사회와 문화에 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 여자들은 화장실을 왜 이렇게 유별나게 써”

3년 전 해고 위기를 넘기고 사무실을 옮긴 새 건물에서 청소 노동자분이 혀를 내둘렀다. 좁은 사무실에서 밀도 높게 여자들이 모여 일하니 처음 접하는 화장실 상태가 청소하시는 입장에선 깜짝 놀랄 일이었다. 다른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봤다. 저자는 꼭꼭 숨겨진 상담사들을 찾아내기 위해 구로공단 구석구석 ‘구름정원(흡연장)’을 찾아 돌아다녔다는데, 아마 건물에 들어가서 여자 화장실을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었겠다. 

아 근데 인터뷰 보니 저자가 남자분이었다! 책 읽는 내내 여자로 느낀 거 나만 그랬나! 딱딱한 연구일 거 같지만 글 매무새가 다정하고 촉촉하다.

 

2020년 구로콜센터 코로나 집단감염의 충격으로 상담사들의 열악한 환경이 주목받았다. 그 후로 소설, 에세이 등 관련 책들도 몇 나왔다. ‘정말 우리 얘기’, ‘너무 공감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로 책을 내다니 놀랍다’고들 했다. 그러나 현실을 알리는 얘기 정도로 부족했다. 우리가 3년 전과 또 같은 ‘강제방출’ 현실에 처했기 때문이다.

 

상담사 경험자들이 직접 쓴 책들과는 다른 이 책의 가치는 상담사들의 고용과 노동현실에서부터 상담사 간 관계, 상담사들의 노동조합, 정동노동과 정보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 제시, 이 산업의 역사와 국제 비교 등 이슈별로 하나씩 다 책으로 내도 재밌을 것 같은 정보들을 정성으로 모으고 성찰한 저자의 ‘뚝심’에 있는 것 같다. 

콜센터 상담사를 만나기 위해 구로공단을 수없이 배회(?)한 것,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이후 과정을 끝까지 추적한 태도, 노동조합을 찾아가 청소에 회의에 집회도 모자라 몸펴기 운동까지(!) 같이한 일 등에서 대단한 진심과 뚝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인류학자라 그런가 의사라 그런 건가.

 

암튼 원하청 관계, 고용 관계, 고객과의 관계 뿐 아니라 ‘상담사 사이 관계의 특징과 배경’을 깊이 있게 다룬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무척 공감했다. 그런 현실이 알려지길 바란다던 그 상담사의 마음이 저자를 통해 여기 동료들에게 전해졌다는 걸 그분도 아신다면 정말 좋겠다.

 

더 나아가 ‘감정노동’이라는 정의가 한국만의 특징적 호명으로 이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거라며 ‘(불평등하게 분담된)정동노동’, ‘정보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불쉿잡, 밑바닥 노동으로 여겨지는 이 일에 ‘정보노동’이라는 전문성을 부여하는 부분에서는 ‘초연결-고립시대에 사회적 돌봄의 순기능을 하는 노동’ 정도로 고민했던 내가 머쓱했다. (물론 언니들은 실제로 상처받은 마음을 다루는 진짜 베테랑이기는 하지만)

 

영국-인도-필리핀-한국의 콜센터 산업의 역사, 특징, 주요 연구 이슈를 비교하며 한국 콜센터 산업의 특징을 말하는 부분에 가서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어서 ‘이야 이 양반 진짜’ 싶었다. 물론 하시는 업과 연구를 전혀 몰랐던 내 입장에서 그런 거겠지만.

 

(p.332) 그렇다면 한국 콜센터 산업만의 특수한 점은 무엇일까? 먼저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한국의 경우 콜센터를 둘러싼 주된 이슈가 고객의 갑질이나 폭언 등 강도 높은 감정노동 논의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는 점이며, 실제로 콜센터 상담사와 관련되어 제정된 제도들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영국의 논문들은 전자식 파놉티콘, 집단적 저항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인도는 언어 제국주의, 인종주의적 차별, 야간 근무 등과 관련된 논의들이 중심을 이룬다.

 

(p.340) 결국 한국의 콜센터 산업은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 변화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 여성상을 재생산해내는 배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역설적이게도 전통적 여성상을 거스르는 흡연을 허용한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정말로 모순된 현실이다. 한국의 콜센터 산업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여전히 낮게 제한하면서 전통적 여성상은 재생산한다! 영국, 인도, 한국의 콜센터 산업을 조사한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이다.

 

(p.343) 실제 상담사의 업무는 쉴 틈 없이 수많은 정보를 확인, 처리, 기록, 제공하는 일이다. 따라서 콜센터 상담사를 감정노동자로만 명명하는 것은 이들이 제공하는 노동상품의 가치를 오히려 폄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기업에서 상담사들이 수행한 정보 제공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감정노동자보다는 전자 혹은 정보 노동자로 불리는 게 적합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노동조합 하는 상담사들과 만난 이야기에서는 폭풍 눈물 쏟기도 했다.


나의 동료들도 2019년 원청 기업의 정규직화 이슈로 그 기업 건물 안에서 밖으로 ‘풀 아웃소싱’ 됐다. 코로나 이후 금융사들이 사내 콜센터들을 ‘옳다구나’ 대대적으로 내보내기 전에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애초에 그냥 나가라 했던 건데 노동조합 만들어서 일자리를 지켰다. 규모가 정말 작아 책에 나온 분들처럼 대대적인 투쟁의 길은 선택지가 될 수 없었지만, 작은 권리를 쌓아가며 가늘고 길게 우리 터전을 지켜가기 위해 균형을 잡았고 코시국에 노동조합은 필수노동-고위험직군 보호에서 꽤나 빛을 발했다.

3년이 지난 후, 손쉬운 배터리 교체로 ‘해고가 없는 직종’이었던 콜센터에서도 코로나 충격에 무수히 인원 조정을 했다던 2021년 끝자락에 우리는 다시 ‘강제방출’ 위기에 놓였다. 그 정도 소박한 권리도 감당 못 할 만큼 이 업은 밑바닥인 걸까, 그나마 노조가 있어 한 달 넘게 더 버티고 회사도 함부로 손 못 대니 이 정도면 이미 대단한 걸까, 3년 일군 이 작은 권리로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니까짓게’하는 저 시선에 이제는 지지 않을 언니들이지만 이 업의 구조적 한계를 여기서 다 감당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이 책이 출간됐다.

 

나 또한 노동조합을 통해 상담사들이 ‘콜센터 안에서 순응하기도 저항하기도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음을(p.275)’ 알게 되었기에, 조용히 지켜온 작은 노동조합이 어쩌다 3년 만에 회사도 고객사도 감당 못하겠다 하는 업계최고(?)가 되어버렸는지 몰라도 우리의 오늘이 200만 상담사의 권리에 한 조각 가능성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도 찾아 읽게 됐다. 다행히 저자는 여러 콜센터 노동조합을 만난 후 이렇게 얘기해줬다.


(p.239) “모욕의 무게에 짓눌려 위축되었던 상담사의 몸 실천과 노동조합 설립 이후 당당해진 몸 실천 사이의 격차만큼이 노동조합의 실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실체가 있다.

 

“조합원이 다 여자라 노조가 취약해”, “끝까지 싸워보면 결국 아줌마들이 제일 쎄” 

노동조합에서 여성이 많은 사업장을 두고 하는 통상적인 대화. 하지만 둘 다 결과를 묘사한 것일 뿐이다. 여자라 약하거나 여자라 끈질긴 게 아니다. 경력단절, 육아와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니 가장 낮은 환경에서, ‘친절’을 요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가장 저평가된 최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것이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럴 뿐이다. 


이들이 일하는 조건만큼 이들을 고용한 회사와 구조도 취약하기 짝이 없어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문제가 생겼을 때 싸우기는커녕 싸울 대상을 찾기도 어렵다. 업계 탑5 기업이라도 인력위탁기업은 일을 주는 재벌 대기업과의 계약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니 노동조합 좀 하면 이런 사정은 사측의 읍소 또는 사업장 방출로 이어진다.

 

여기까지 상황을 들으면 다들 ‘아이고 어떡해요?’한다. 진짜. 어떡할까.

그런데 우리 하루아침에 쫓겨나진 않았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하는 상황에서 자꾸 생겨나는 변수는 오직 상담사들의 버티는 몸 그 자체에 있다는 걸 느끼는 하루하루다. 

그런 우리에게 ‘당연히 그런 줄, 어쩔 수 없는 줄’ 알았던 일상을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 산업과 사회의 달라질 바를 성찰하는 이 책은 용기를 준다.

3년차 작은 노동조합의 소박한 권리로도 충분히 “건강과 대인관계의 회복을 통해 얻은 당당한 몸의 소유자인 그들은(p.287)” 덕분에 조금 더 용기를 내 “핸즈업(p.277)” 해볼 수 있겠다. 


#창비스위치

#서평단활동

- 창비에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만, 안 뽑힌 줄 알고 사서 읽고 씁니다ㅎ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