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렉과 함께 걷는 파리
redd22 2025/02/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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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를 쓰다, 페렉
- 김명숙
- 16,200원 (10%↓
900) - 2024-12-10
: 1,295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조르주 페렉을 모르고 사물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짧은 분량임에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독자로 하여금 "조르주 페렉은 누구인가?" " 사물들은 어떤 책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비와 제롬과 함께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파이프라인 같은 도시의 거리’(p.27)를 걸으며, 가장 아름다운 이국적 사원을 만나고, 부와 물질적 풍요에 물들 수밖에 없던 예술가들의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법 같은 시간을 선사하는 영화관에서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p28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거리로 나선 이유가 그저 추제할 수 없는 시간과 젊음이라 해도 그만이다. 정착하지 않았다는 건 "끝도 없이 돌아다닐" 자유이자 이유이므로.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무력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만드는 도시는 비단 파리만이 아닐 것이다. 익숙해지면 찾아오는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어디든 익숙해지면 권태롭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래도 그곳이 가장 좋았다고 느끼게 된다.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그 소소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가장 소중한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p66 도시의 관찰자가 일찌감치 알아챈 속도란, 그 안의 사람들을 겉늙게 하고 무력하게 하고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속도가 세상을 늙게 한다"....가속도가 붙는 세상을 아무리해도 따라갈 수 없기에, 끈덕지게 따라붙는 무력감을 떨치기 어렵다. 무력감의 끝은 외로움. 절벽 같은 외로움이다.
p95 우리가 지겨워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다. 서루의 말을 변주하면, 그건 정신적인 지겨움이다. 우리는 자신이 지겹다. '여기', '지금'의 나를 못 견뎌 한다. 이곳을 떠나는 이유는 그런 못견딤이다.
파리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만나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는 신비롭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한 기분을 들게 한다. ‘다름’에서 시작해 결국 ‘같음’으로 이어지는 길. 그렇게 파리를 만나며, 멀게만 느껴졌던 그곳이 사실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p35 욕망을 나무랄 수 있을까? 사물에 대한 탐닉, 지적 허영을 흉볼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누구나 예외없이 소비하는 인간으로 꾸준히 진화해 온 것 아닐까. 소비의 대상이 사물이건 부의 기호건, 아니면 지적 유희건, 우리는 늘 허기지고 목마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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