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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와 비단장수>는 ‘어수룩하지만 착한 바보’인 주인공이 비단을 팔기까지 벌이는 좌충우돌 옛이야기이다. 표지에는 비단장수가 돌부처의 머리꼭대기에 앉아 입이 귀에 걸리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다면 돌부처는 비단장수에게 어떤 존재일까? 자못 궁금하다. 돌부처는 자신의 머리위에 올라앉은 비단장수를 싫어라 하는 표정도 없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눈망울을 굴리고 있으니 여하튼 공생의 관계일까?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바보가 엄마랑 단둘이 살고 있었대.”

옛이야기의 전형적인 구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에를 치고 비단을 팔아먹고 사는 이들 가족에게 비단을 팔아오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제값을 못 받을까 염려가 된 엄마는 아들에게 말 많은 사람들한테는 절대 비단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다. 헌데 이 어머니의 말투가 제대로 된 충청도 사투리다.

“야야, 절대로 말이 많은 사람들헌테 비단을 팔아선 안 돼야! 다 비단 값을 깎으려고 그러는 겨~

말이 없고, 점잖은 양반들이 좋은 사람들이여. 알겄냐아~, 이잉?! 에미 말을 명심혀! 꼭~”

이 진정성 있는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꼬일 것이라는 예감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 세상천지에 그 비싼 비단을 사면서 말없이 덥석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말 없는 사람에게 비단을 판다는 건 애당초 그른 일이다. 독자의 상상대로 바보는 당연히 비단을 팔지 못한다.

결국 비단을 한 필도 못 팔고 말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장터를 도망치듯 빠져나온 바보는 아픈 다리를 쉬다가 뜻밖에 말 없는 어르신을 발견하는 횡재를 한다. 그 말없는 어르신은 돌부처였으니 바보는 급기야 반가운 마음에 비단을 사시라 권하다 못해 외상으로 주고는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 건 당연지사다.

이 책의 압권인 장면은 바로 바보가 돌부처에게 비단을 파는 장면과 비단값을 받으러 왔다가 묵묵부답인 돌부처에게 성을 내는 장면이다. “말이 없고 참 좋은 분이니께 지가 이놈을 다 외상으로 드릴게유.” 했다가

“아이구, 점잖은 냥반이 왜 이러신댜? 그러지 말구 얼렁 비단값 줘유! 아니 뭐여? 시방 뭐 하는 겨? 넘의 비단을 공으로 먹으려 드는 겨?” 하는 대목에서는 비단장수가 바로 코 앞에서 주절거리는 것처럼 너털웃음을 웃게 된다. 아. 이 아름다운 모국어라니! 사투리가 이처럼 정겹고 아름다울 수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 이것이 바로 우리말의 정겨운 힘이다. 어릴 적부터 이런 구수한 사투리를 읽으며 자란 아이들은 토박이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넘칠 것이다.

성이 난 바보는 돌부처를 발로 뻥 차서 넘어뜨리고, 그 돌부처가 있던 자리에는 도적떼가 훔쳐 놓은 보물들이 한 가득이었다니, 바보는 그 금은보화로 엄마와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참으로 재미나다. ‘얼간이의 비단장사’라는 옛이야기를 박지윤 작가는 맛깔스런 글과 익살스런 그림으로 버무려냈다. 그림은 오방색을 주조로 해서 전통적인 색감을 물들였고, 곳곳에 펼쳐진 콜라쥬형식의 말풍선은 운율감으로 노래하며 춤추는 모양새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서 재미난 이야기꽃을 터뜨린다. 익살스런 사람들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샘솟을 것 같다.

사람들이 바보를 부르는 소리는 손 모양으로, 엄마가 아들을 혼내는 소리는 발 모양으로, 바보가 돌부처에게 화내는 소리는 불꽃 모양으로 표현한 말풍선의 재미와 재치 앞에서는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옛이야기는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을 되살려낸다. 세상이 복잡하고 각박할수록 어수룩한 바보가 그립다. 어머니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행하는 단순한 바보가 정겹다. 모두 잘난 사람들만 많은 세상에서 좀 못나고 어수룩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절로 푸근해질 터이다. <돌부처와 비단장수>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 말을 삼가라는 것 아닐까? 말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말이 독이 되기 십상인 요즘, 부디 말을 경계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는 것이 아닐지. 옛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무척 재미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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