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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나무님의 서재
  •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 케이트 디카밀로
  • 10,800원 (10%600)
  • 2024-06-24
  • : 539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금발의 소녀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질주한다. 호랑이는 어둡고 깊은 숲속으로 맹렬히 달린다.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온몸을 활처럼 솟구쳐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라면 소녀는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을 것만 같다.

 

케이트 디카밀로의 어린이를 위한 책 <슬픔이 날아오르도록>의 표지 그림은 이토록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호랑이 모습만 기억하는 우리에게 이 그림은 원초적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표지 그림은 이렇게나 강렬한데 제목은 상대적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명사나 동사로 끝나는 대신 ‘날아오도록’이라는 연결 어미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조용히 그려본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뒤에 어떤 글을 붙이면 좋을지.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뛰어간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달린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실컷 운다, 이야기한다, 잔다, 그리워한다 등등. 그러다 책의 그림과 어울리는 적절한 뒷문장은 역시나 ‘달린다’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그림은 책 제목을 완결짓는 그림이라 봐야겠다.

 

책의 주인공은 로브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플로리다의 모텔로 이사한 어느 날 아침, 로브는 숲속에서 우리에 갇힌 호랑이를 만난다. 로브는 호랑이에게 연민을 느낀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로브는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자 슬픔을 마음속에 눌러만 놓고 지낸다. 그런 로브에게 우리에 갇힌 호랑이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로브가 호랑이를 처음 만난 날,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시스틴을 만난다. 로브와 시스틴은 공통점이 많다. 낯선 곳으로 전학 왔고, 아이들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따돌림을 당하고 있고, 시스틴의 부모는 이혼해서, 엄마가 없는 로브와 처지와 비슷하다.

 

표면적으로 둘의 상황은 비슷해 보이지만 로브와 시스틴이 문제를 해결하는 양상은 매우 다르다. 로브는 자신을 여행 가방이라 생각하며 모든 감정을 그 가방 안에 꾹꾹 눌러 담는다. 로브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고 지독하리만치 감정을 숨기고 참아낸다. 하여 로브의 두 다리는 두드러기가 점령한다. 로브의 보호받지 못하는 상처는 이렇게 밖으로 돌출되어 독처럼 퍼져간다. 반면 시스틴은 온 세상 화를 다 품고 있는 것처럼 ‘화가 가득 차서 번개처럼 사납게 쏘아’ 댄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하며 몸부림친다. 뜻밖에 로브는 시스틴이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자 싸움에 끼어든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시스틴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로브는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는 조건으로 모텔 주인인 비첨 씨에게 우리 열쇠를 받게 된다. 로브는 이제 꿈틀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호랑이를 둘러싸고 시스틴과 충돌하며 의견 대립도 보이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은 로브나 시스틴, 호랑이 모두 똑같다. 이 과정에서 로브는 아빠와 막혀있던 감정의 골을 무너뜨리고 극적으로 화해한다.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모두 어른스럽지는 않다. 폭력적 상황을 그저 방관하는 학교버스 운전자가 그렇고 돈만 아는 비첨 씨도 그렇다. 로브의 아빠는 아내를 먼저 보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어쩌면 로브의 아픔은 상처를 직면하지 못하는 아빠의 두려움으로 인해 더 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그럼에도 로브를 사랑하고 책임지려 하는 존재다. 반면 로브와 시스틴을 어루만져주는 어른의 모습도 있다. 모텔에서 일하는 윌리메이 아줌마는 로브와 시스틴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네 다리에는 네가 꾹꾹 짓눌러 놓은 슬픔이 몽땅 모여 있어. 원래 슬픔은 가슴에 있어야 하는데, 네가 짓눌러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잖아. 그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해 줘야 돼.”(48쪽)

 

로브의 마음을 읽어주며 시스틴의 독설 속에 있는 외로움과 문제점을 이해해주는 예언자의 면모를 가진 어른이다. 책을 읽는 어른이라면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해야 할지 되짚어보게 한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상처받고 자라다가 플로리다로 이사하면서 도서관에서 책과 친구들을 만나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플로리다는 작가가 밝고 건강하게 성장했던 곳을 그리고 있으니 작가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책의 주인공 로브와 시스틴이 서로 마음을 여는 매개는 재미나게도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이다. 그렇다. 사소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무엇이 공통의 관심사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대와 물리적인 거리를 단박에 해소할 수 있다. 더욱이 로브는 나무를 깎아 작품을 만드는 취미가 있고, 시스틴을 그런 로브를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라고 칭해줄 수 있으니 이런 게 인연이 아니면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아는 또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존재하는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결국 우리 삶을 향기롭게 하고,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라는 생각에 마음 따뜻해진다.

 

이 책은 상처, 우정, 친구,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순수하게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시스틴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상상을 하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로브와 손을 꼭 잡고 소소한 일상 속 행복을 느끼는 존재로 성장해가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성장하는 존재다.

"너는 너 스스로 구해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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