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성서사에서는 사순절을 맞아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을 출판했다. 고통과 십자가에 대한 깊은 묵상을 최대한 간결하고 어렵지 않게 쓴 책이라 각 성당의 올해 사순절 추천도서로 지정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천주교 신자는 사순시기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참회와 회개를 하면서 다가올 부활을 준비한다. 성경에서 숫자 40은 하느님의 일을 준비하는 수련의 기간을 의미한다. 신자들은 사순절에 예수님 수난을 묵상하고, 기도와 단식(욕구 절제), 자기희생, 자선 등을 실천해야 한다.
개인적 경험으로 혼자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 수난, 고통, 십자가, 부활을 묵상하는 것은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좋은 책이 깊이 있는 묵상과 신앙적 성장에 필수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만 보면 특히 기도 응답을 못받아 답답하거나 하느님을 원망 중인 이들이 솔깃할 것이다. 그런 분들은 ‘왜 납득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바로 얻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해 다루긴 하지만, 단번에 모든 궁금증을 해소한다기보다, 고통의 신비와 십자가에 대한 묵상,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해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연구하고 있다. 이런 류의 책은 독자가 자기애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읽는다면 사고와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또 본인의 신앙 수준, 삶의 경험에 따라 마음에 와닿는 차이가 클 수 있으니 반복해서 읽으면 좋다.
저자는 솔직하게 하느님, 사랑, 믿음, 고통, 구원과 같은 신비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만일 우리가 삶의 신비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신비가 오히려 유한하고 제한적이라고 했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맡겨진 수난과 무력함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신심 깊은 신앙인이 겪는 어둔 밤이 어떤 의미인지,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앞서 썼듯이 고통 중에 있는 분은 이 책을 통해 고통이 바로 사라지거나 해답을 얻기보다는, 삶을 올바른 신앙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그로서 인생과 고통에 대한 인식을 정리하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뿐 아니라 십자가와 수난에 대해 오래 연구한 분들이 쓴 책들을 읽으면 자신이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사실이나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 깨닫게 되면서 예수님, 더 나아가 나 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 인생의 고통(십자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단순히 기도 응답에 관한 책보다는 오히려 이런 류의 책들이 위로와 더 큰 희망을 준다는 것은 이를 직접 겪은 이들만 알 것이다. 신자라면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늘 얻게 해주지는 않으셔도, 함께 하면서 다른 경험을 통해 삶을 의미있게 이어가고 겸손하게 하셨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통은 불가피를 인정하게 되는 삶, 고통 인정하고 남에게 전가 안하는 것, 자신의 일부가 죽는 경험, 기다림(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하느님 선물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름을 받아들이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 예상과는 다른 놀라운 결과를 받아들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부활과 신학자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그리스도론을 연계시킨 부분도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저자는 하느님은 모든 불합리, 고통, 무의미 등에 대한 구조자가 아닌 구원자로서 해답은 부활이라고 한다. 우리가 부활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다면 이 책은 부활의 심오한 의미를 쉽게 설명해준다. 나 역시도 나이가 들면서 자꾸 냉소적이 되는데 다시 한번 마지막 결론을 내는 권한은 악에 있지 않음을 믿으려 한다.
자아실현을 최고로 여기는 현대에 하느님마저 수단으로 여기는 소위 번영주의 신학이 판치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 본질이 아니다. 벗어나기 힘든 고통과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오래 고통 중에 있으면서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그동안 너무 자기 중심적 신앙이었고, 삶은 참으로 예측불가하게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자들이 사순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회개를 하고 신앙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면 매우 의미있을 것이다.
<대상>
올해 사순절 추천도서
예수님 십자가, 수난, 고통, 부활의 의미를 알고 싶은 분
고통 중에 있고 기도 응답을 못받아 답답한 분
참신앙인의 태도를 가지고 싶은 분
사순절 강론 준비를 위한 참고도서
<책 속으로>
십자가의 지혜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는 지혜이며 흐리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알게되는 지혜입니다....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직관적 차원에서 우리는 각자의 고통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에 연결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고통도 예수님의 고통처럼 구원에 이르는 고통임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만약 우리가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신비라면 그 신비는 우리처럼 유한하고 제한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의 우물은 우리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수난에 해당하는 시기는 예수님이 무언가를 행하신 일보다 당신께서 받아들이신 일로 정의되는 시기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삶이 능동적인 삶 만큼이나 다른 이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위대한 신비가는 이 투쟁을 ‘믿음의 암흑같은 밤’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느님이 더는 당신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도록 우리의 감정과 사고를 고갈시키는 경험입니다...하느님을..우리 감각에서 완전히 감추어 버리심으로써 우리를 정화하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이 우리가 암흑 속 고통을 느끼게 하시는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고 참신앙도 우리가 상상하는 신앙 너머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신비를 우리가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심오한 진리가 아닐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말은 우리가 진리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만족스러울 정도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심오한 신비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 신비를 매우 강렬하게 직감한다면 그 신비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진리가 됩니다.
하느님은 구조하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하느님이 고통과 죽음을 막기 위해 개입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하느님은 고통 자체를 구원해주시고 죽음을 의롭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란 이름의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