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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aehwang님의 서재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 15,750원 (10%870)
  • 2015-11-25
  • : 1,498

1

 "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군요. 붉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초록색으로 된 기다란 것에 붙어 있네요."


2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1, 2는 무엇을 묘사한 것일까?

두 가지 사물을 보여주고 무엇인지 물었을 때 이런 식의 답이 나온다면? '꽃'과 '장갑'을 보고 이렇게 답 한다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시각인식불능증'을 겪는 사람은 사물을 이렇게 바라본다. 이들에겐 사물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대상을 구체적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범주적으로 파악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인 음악가 P는 인식불능증 환자다. 성악가였던 그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중 어느 때부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에 일종의 종양이 생긴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그는 음악의 힘으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이처럼 우리에게 낯선 여러 신경계 환자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년에 82세로 타계한 저자 올리버 색스(1933-2015)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내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의 불가사의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글은 유려하고 문학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글이 감동을 주는 건 환자를 병자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는 애정과 관심 때문이다. 책의 서두에 인용된 아이비 맥킨의 말처럼 그는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 의사였다.


이 책에는 다양한 신경계 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49세 지미의 기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해서 보낸 젊은 시절에서 멈춰버렸다. 그때까지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고 자신도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지미의 문제는 바로 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젊은 시절 이후의 삶은 매번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기억이 끊겨서 연속성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버린 지미의 경우는 뇌 유두체 신경세포가 알코올로 인해 파괴되어 나타나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진단된다.

색스가 지미를 만났을 때 이전 담당 의사가 보낸 진료 기록에는 "가능성 없음. 치매, 착란, 정체성 장애 증상 보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억 상실증을 빼곤 두뇌 회전도 활발하고 지적이며 호감을 주는 지미를 돕기 위해 색스는 그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그의 행동을 관찰한다. 지미가 성당에 앉아 있기를 잘 하는 것을 보고 색스는 그가 집중 상태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연속성을 체험함을 짐작한다. 결국 지미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내 그에게 정원 손질을 맡긴다. 그의 기억 상실증은 치료되지 못했지만 지미는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영혼의 통합을 경험하게 된다.


다발신경염에 걸려 자신의 몸을 느낄 수 있는 고유감각을 잃어버린 27세 크리스티나 역시 상상이 쉽지 않은 특이한 경우다.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그녀.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고유감각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터득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비틀대는 동작으로 어설프게 버스를 타면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술에 취한 거냐?' '눈이 안 보이냐?' 등 모욕적 언사를 내뱉기도, 이상한 얼간이로 취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색스는 그녀를 "신경의 병마와 용감하게 맞서 싸운 이름 없는 영웅, 여장부"라고 부른다. 크리스티나의 경우는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동작이나 생각의 과잉이 갖가지 강박 현상으로 나타나는 투렛 증후군, 계속해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관자엽 발작이 회상과 환각을 일으키는 사례, 저능아이지만 시적인 재능을 갖춘 리베카와 2000곡 이상의 오페라를 기억하는 마틴의 이야기, 자폐증, 중증의 정신박약증 진단을 받았지만 '무의식적인 알고리즘'이 내재된 '수의 천재' 쌍둥이 형제, 자폐증 환자이지만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가진 호세의 이야기 등 책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자를 기계처럼 대하는 의사가 많아진 시대에 색스의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모든 의사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할 듯. 일반 독자도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있는 게 많다. 무엇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정신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되돌아 보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정신 세계를 살고 있는 이들을 단지 '비정상'이라는 이유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정신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게 될지도.

색스는 "본래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나아가 그것을 살려나갈 수 있는 무대가 이 사회에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들이 자신의 세계 속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색스의 책은 감동적인 서사로 독자를 그 이해의 세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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