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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aehwang님의 서재
  • 작은 아씨들 1
  • 루이자 메이 올콧
  • 10,800원 (10%600)
  • 2011-02-21
  • : 1,264

1868/69년에 출간된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의 <작은 아씨들>은 영화로도 유명하다. 1930년대부터 1994년 위노나 라이더를 주연으로 한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의 영화까지 여러 번에 걸쳐 영상으로 옮겨졌다. 오래 전에 영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네 명의 자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이야기였던 것으로만 기억했다. 그래서 이제 소녀시절이 아득해진 나에게 이 소설이 어떻게 다가올까, 책을 읽기 전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손에 쥐고 1,2권 합쳐 800페이지가량 되는 소설을 읽으며 내내 즐거웠다. 스토리텔링의 전범이 될 만한 서사적 전개는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소녀들의 성장 소설로 이해되는 이 작품에서 네 명의 자매는 제각각 특징 있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누구보다 부각되는 인물은 둘째인 조 마치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조는 남자 같은 성격, 자유분방함,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는 열정과 이야기꾼으로서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설은 보부와르를 비롯해 거트루드 스타인, 조이스 캐롤 오츠까지 현대의 여성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는데, 무엇보다 조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진취적 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다. 1950년대 한 남성 비평가로부터는 “분석이 거의 필요 없으며 분석의 여지가 없는 책”이라고 평가절하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여성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내용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에 위치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게 항상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다. 책이 쓰인 당시의 여성적 삶의 구속과 예술적 자유와의 딜레마를 잘 그려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조가 아버지뻘 되는 독일인 교수와 결혼하는 결말을 “예술가로서, 여성으로서 루이자의 퇴보”라고 보는 비판적 관점도 있다. 조가 결혼과 함께 학교를 만들어 사랑과 대안적 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워낸다는 이상적 결말이 조의 작가적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페미니즘 비평이 대체로 조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작은 아씨들의 어머니인 마치 부인이었다. 내 자신이 이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어서인지 모르지만, 소설 속 어머니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왔다. 11살 막내 에이미, 13살 베스, 15살 조와 첫째인 16살 메그가 성장하여 결혼하기까지(베스는 일찍 죽는다) 약 20년에 걸친 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필요할 때마다 개입하여 지혜와 사랑으로 자식을 인도하는 마치 부인의 모습은 우리 시대 엄마들에게 여전히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마치 부인은 말과 행동으로 지혜를 보여준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아이들에게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함을 이야기를 통해 일깨워주고(114), 사람을 평가할 때는 외모나 조건보다 태도와 대화에서 드러나는 장점을 보아야 한다고 일러준다(155). 자신의 끔찍한 성질을 자책하는 조에게 인간은 모두 유혹에 약하며 ‘내면의 적’을 경계해야 한다고, 자신의 약점을 경험으로 들려주는 솔직함을 보이기도 한다(169). 언제든지 아이들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고(170), 딸들이 좋은 사람과 결혼해 행복하길 바라는 모든 엄마들의 소망을 공유하지만 돈이나 조건을 보고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차라리 노처녀로 살아도 좋다고 단호하게 말할 만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엄마다(198).

 

마치 부인의 행동 또한 지혜롭다. 방학이 되고 휴가를 맞은 아이들이 1주일간 자유롭게 제멋대로 생활하도록 ‘빈둥거리기 실험’을 허락함으로써 노는 것에 지쳐 스스로 일을 찾아가게 만드는 지혜는(219) 끊임없이 아이들을 관리하려 하는 우리 사회의 엄마들에게 특히나 필요해 보인다. 의도적으로 계획된 엄마의 하루 휴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독립성을 키우고 가족의 안락을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몫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처방으로 이용된다(233). 마치 부인은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237), 힘이 들 때도 항상 희망을 갖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라고 조언하며(313), 어려운 일에 처해도 올바른 방법으로 도움을 구한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364).

 

로리와의 관계로 떠나 있기를 원하는 조에게 자유를 허용해 뉴욕으로 갈 수 있게 하고(2-156), 결혼한 큰딸이 아이를 낳고 남편과 소원해지자 부부생활에 대해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들려주며(2-245), 베스를 잃은 조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곁을 지켜주며 (308) 조의 재능을 알아보고 글쓰기를 해보라고 격려한다(312). 실제로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어머니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유분방해 서로 통하는 면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자신의 책을 어머니에게 헌정하였고 말년에 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끝까지 보살폈다고 한다. 소설도 조가 엄마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정말 엄마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인내는 평생토록 감사해도 모자랄 정도예요.”

 

우리 사회는 가족 해체와 불행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다. 부모교육, 엄마 교육, 아버지 교육의 성행은 자식과의 관계에 서툰 부모가 그만큼 많음을 반증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적 소설로, 또는 작가적 꿈을 키우는데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읽힐 수 있지만 부모 교육서로도 좋은 소설이다. 마치 부인의 지혜와 사랑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지혜로운 엄마가 필요한 시대. 엄마예비생들과 엄마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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