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소설을 이전에 몇 권 읽었었다. 하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다. 작년에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고, 이 소설이 80년 광주를 소재로 삼았다는 걸 어렴풋이 듣고도 바로 책을 사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가와 광주가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소설과 섬세한 필치로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작가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김영하 작가가 한국인의 멕시코 이주사라는 역사적 소재를 소설 <검은 꽃>으로 풀어냈던 것이 예외였던 경우와 비슷했다. <검은 꽃>은 김영하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던 역작이었고, 이제 <소년이 온다>는 "한강을 뛰어넘는 한강"의 역작으로 남게 되었다. 책을 손에서 일순간도 내려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야 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건 어쩌면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일때 가르쳤던 아이. 소년의 이름은 동호였다. 작가네 가족이 서울로 올라가고 이전에 살던 집에 동호네가 이사들어와 살았던 인연. 그 집에 세들어 살았던 동호와 같은 또래의 정대. 이 아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80년 5월 광주 학살의 환란 중에 목숨을 잃는다. 아이와 아이 가족과의 인연 때문에 이들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가. 이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된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한 소녀의 주검일지도 모르겠다. 5.18 이후 2년 뒤 열두살인 작가는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던 사진첩에서 소녀를 보았다. "그 여자애는 뺨과 목이 총검에 찢긴 채, 비스듬히 한쪽 눈을 뜨고 죽어 있었다".
소설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을 밝히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과 부모와 친척들의 대화로부터 엿들었던 끔찍한 얘기들, 옛 집과 동네 답사, 망월동과 국립 신묘역 방문, 자료 수집과 유가족과의 만남을 거치며 광주를 기억했다. 악몽에 시달리며 이들의 시간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추체험하고 글로 토해놓았다. 소설은 24년 전 무구하게 죽어간 소년과 그의 친구와 시민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비명에 간 어린 소년을 위로하고, 그때 죽거나 살아 고통받은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한다. 허망하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끔찍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음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 지금도 과거가 악몽인 사람을 기억하게 만든다.
친구 정대와 거리에 나섰다가 군경의 발포로 정대는 그자리에서 죽고 동호는 도망친다. 죄책감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다 상무관에서 시체 관리일을 보조하던 동호는 결국 도청 진압 때 목숨을 잃는다. 상무관에서 알았던 은숙누나, 선주누나, 진수형은 살아남지만 그 이후 이들의 삶은 지옥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감옥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와서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 진수, 대학에 진학하지만 중퇴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며 고초를 겪는 은숙, 끔찍했던 고문의 기억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선주, 일찍 어린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리움을 가슴 속에 안고 살아온 동호 엄마. 이들 모두 동호를 기억한다. 자신의 삶이 비록 고통스러워도 그들에게 동호와의 기억은 힘을 주기도 하고,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끔찍했던 80년 광주의 참상을 되살려낸다. 하지만 섬세하게, 상처를 어루만지듯, 이들에게 다가간다.
소설은 '너', '당신'이라고 인물들에게 말을 건다. 독특한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마치 독자 자신이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말고, 그들의 고통을 느끼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함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걸까. 초혼(招魂)의 글쓰기를 통해 죽음을 애도하는 소설 <소년이 온다>. 그렇게 '돌아온 소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