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올 3월 출간된 책이니 어떻게 보면 아직 신간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리뷰가 늦었다고 하는 건 내가 저자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와 나는 이제 4년째로 접어드는 책모임을 함께 하는, 나름 각별한 사이다. 처음 만난 2016년 겨울부터 우리는 별일이 없으면 매주 만나 밀란 쿤데라니 가즈오 이시구로, 도스토옙스키, 토마스 만 등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실제로 작품을 완독한 사람은 좀처럼 없다는 거장 작가들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는 엄두내기 쉽지 않은 ‘마음의 짐’과 같은 책들을 골라 읽는,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멸종 위기에 처한, 약간은 변태적인 사람이 만난 모임이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고 주축이 되어 지금까지 끌어온 그녀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인본을 받았고, 추가로 구매해 지인에게도 돌렸다. 그러고서 자신만만하게 곧 리뷰도 써줘야지, 하고선 삶에 치이고 일이 바쁘다 보니 거진 네 번의 계절이 지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읽은 책도 물론 있지만 <혼밥생활자의 책장>에 실린 많은 책은 작가가 만든 동명의 팟캐스트에서(그녀는 라디오방송국 피디이기도 하다) 게스트들과 함께 소개하고, 작가와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혼밥생활자들이 모여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도 했던 책들이다. 묵직한 문학작품뿐 아니라 그녀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권과 동물권, 채식, 환경, 페미니즘, 정치, 우울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의성을 가진 책들이 소개된다.
에세이다 보니 아무래도 책 곳곳에서 언제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려 하는, 연대의 소중함과 자립의 가치를 모두 알고 있는 저자의 마음결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시간 내가 지켜본 그녀는 왕성하게 외부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니지만 사실은 내향적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대부분의 일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재능 많고 유능한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듯 때론 지치고,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실망하기도 한다.
평소에도 달변가인 작가는 언제든 툭, 치면 마치 미리 준비해둔 대본을 읽듯 유려하게 생각을 술술 풀어낸다. 말도 그런데 글은 말할 것도 없다. 입말처럼 쉽게 읽히는 문장들이지만 고심해 언어를 고르고 사유를 가다듬었을 모습이 선하다. ‘책장’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책 이야기만 이어가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 키우는 고양이들, 방송을 만들고 사람들과 연대하며 기획하고 도모했던 일들에 대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좋은 에세이는 아주 새롭거나 기발한 생각을 전하기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운데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한끝의 차이나 관점을 제시하는 글이 아닐까. 그래서 <혼밥생활자의 책장>은 딱 작가만큼 똘똘하고, 야무지고, 그리고 뭉근하게 따뜻하다. 나도 모르게 다수의 논리나 문법에 익숙해지고 경직되어 있는 사고를 그녀는 넌지시, 하지만 아차, 하고 깨닫게 해준다. 이를테면 잘 실패하는 법,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내면의 세계를 키우고 단단히 가꿔나가는 법에 대해 그녀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때론 쓸쓸하지만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자신이 켜켜히 책을 읽으며 쌓아온 소중한 세계를 그녀는 무심한듯 조심스럽게 이 책에서 내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