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나고 자란 시코쿠 지방의 어느 숲 골짜기 마을의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신화 이야기. 신화, 전설, 민담, 역사 등 ‘이야기’가 가진 모든 특성-장점과 단점을 모두 포함해-을 소설로 담아낸 걸작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마을 신화를 줄곧 들으며 자랐던 화자는 어느 날부터 이야기 듣기를 기피하게 된다. 할머니의 사명감, 이야기를 듣기 전에 제사처럼 외쳐야 하는 문구도 그렇고, 여동생도 있는데 혼자서만 이야기를 듣는다는 부담감, 섬뜩한 sf소설을 본 뒤부터 엄습한 ‘이 이야기가 진짜가 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 때문이다.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얼마 후, 계곡에서 죽을 뻔한 일을 겪은 화자는 거기서 각성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로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임무를 이어받은 마을 노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청해 듣기 시작한다.
그렇게 주워 들은 이야기와 직접 본 것, 역사 사료나 마을의 유적지를 통해 알게 된 것, 마을의 풍습과 축제 등으로 자연스레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화자는 지금, 자식들도 성인이 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글로 써나가기 시작한다(그렇게 늦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에 줄곧 관통하는 단어가 바로 M과 T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M은 메이트리아크, 여족장, 여가장을 뜻하고 T는 트릭스터, 말썽꾼이자 영웅을 뜻한다. 신화에서부터 전설, 민담, 역사 순으로 마을의 이야기가 흘러가며 M과 T의 형태로 여러 인물(파괴자, 오바, 오시코메, 메이스케, 메이스케의 어머니, 메이스케 동자, 작가의 어머니, 작가의 아들 히카리,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뭉클함과 무용담을 듣는 듯한 짜릿함이 느껴지는데, 이는 소설이 입말로 서술되고 있으며, 이야기 전달자(할머니, 마을의 노인과 신관, 어머니 등)의 목소리를 구전의 형태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나에게 이처럼 이야기의 압도를 선사한 또 한 작품, 모옌의 <개구리>도 이와 비슷한 서간체 형식이다).
물론 구전이라는 이야기 방식은 오래된 만큼 낡은 것이기도 해, 한계가 적지 않다. 어느 이야기는 결말이 두 개이기도 하고 어느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모순되며 사실과 다르기도 하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새거나, 똑같이 되풀이 되기도 하며, 이야기의 앞뒤가 끝내 다 밝혀지지 않을 때도 있다.
화자의 서술방식도 이와 비슷해서, 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한 이야기에 제기한 의문을 나중에 다른 이야기로 답하기도 하는 등, 친절하면서도 여기저기 딴 길로 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설은 시간대가 복잡하게 나타나더라도 읽고나면 선형적으로 정리되기 마련인데(안 그런 소설도 많고 그걸 의도한 소설도 많지만), 이 소설은 ‘소설’의 특성보단 ‘이야기’의 특성이 강해 서사가 선형적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뿌리를 뻗어나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전개상 필요한데(혹은 궁금한데) 빈 부분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얼개와 인과를 스스로 짜맞춰야 할 때도 생긴다. 누군가에게 듣는 것처럼 편하게 읽히지만,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지? 의문이 드는 순간 앞으로 이동해서 이야기 흐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래서 입말과 구전 형식이지만 마냥 쉽게 읽히는 가벼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구전 문학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이 자체가 의도인 듯 느껴지고, 때문에 이걸 소설로 담아낸 게 놀랍기만 하다.(한편, 입말인데도 문장이 어렵기도 했다. 문장 자체가 길고, 주어와 술어가 멀거나 호응이 잘 되지 않기도 하며, 주어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도 적지 않고, 주어 앞의 수식이 많아 문장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이는 오에 문체의 특징일까?)
구전이라는 특성이 이 소설이 가진 재미의 중심축이라면, 그 축을 기준으로 뻗어가나는 이야기의 ‘신비함’ 혹은 ‘기이함’은 그 재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을 창건한 자는 자신의 형수(‘오바’)와 도망친 자로, ‘파괴자’라고만 알려져 있고,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복고운동’을 한 여성 ’오시코메‘는 마을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자신을 구덩이에 유폐한 사람이며, 마을 봉기의 선두자였다가 감옥에 갇힌 ’메이스케‘는 면회 온 어머니한테서 “괜찮아, 괜찮아, 죽게 되더라도 내가 곧 다시 낳아줄게!”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밖에도 ‘파괴자’는 아침마다 마을의 중앙에 자란 백양나무의 줄기 하나를 잡고 타잔처럼 날아 착지하는 습관이 있고, 파괴자를 비롯한 마을의 창건자들은 거인화되어 백 년 넘게 살아간다. 마을에 일본제국의 군대가 들어오려 하자 마을 사람들은 ‘파괴자’가 마을을 창건할 때 ‘대암괴’를 폭발시킨 일에서 착안해 강에 댐을 만들어 물을 가뒀다 폭파시켜 군대를 몰살시킨다. 마을에 대대로 전해지는 연극은 항상 어떤 군인이 나무에 목을 매는 모습으로 끝나고, 숲에는 발가벗은 채 파리떼를 몰고 다니는 ’엉덩이눈‘이나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자급자족하던 마을이 메이지 유신 등을 기점으로 국가에 알려지게 되는데(즉 신화에서 역사로 편입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발을 디밀려는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모습도 흥미를 보장한다. 전쟁 여파로 인한 징집과 세금을 우려해 호적에 마을 사람 절반만 이름을 올리고, 마을의 특산물인 목랍을 비밀리의 숲길로 유통해 풍족한 경제를 유지하고, 외국으로부터 불도저와 장난감 총을 수입해 개조해서 활용하는 등 마을의 생활적인 내력도 흥미를 더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신화에서 역사로,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작가 개인의 삶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그러나 마지막 파트에서 작가의 어머니와 작가의 아들 히카리, 작가의 아주 어릴 적 경험과 그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숲의 신비’를 통해 이야기가 무한히 확장되며, ‘파괴자’의 신화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가, 결국 시간과 죽음까지도 초월한, ‘혼’과 함께 영원히 살아숨쉬는 마을의 정체성으로 마침내 완성된다.
오에 겐자부로는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세계가 정말이지 확고한데(장애를 가진 아들의 이야기와 마을 신화, 핵 반대 운동 등), 그 안에 여러 갈래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놀라게 된다. 만년에 나온 장편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에서도 이 마을 이야기와 메이스케를 필두로 하는 마을 봉기 이야기도 나온 걸로 기억한다. 거기서는 그 이야기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이것도 혁명 이야기다)와 연결되어 영화화하는 전개로 이어지는데, 여기선 그 마을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고도 재밌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런 게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학교 수업에서 즐겁고 흥미롭게 들었던 신화 관련 이론(이때 ‘트릭스터담’이란 말을 주워 들었다)과 한국의 신화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했고, 그때 배운 신화 전설 민담의 갖가기 특성을 이 소설이 전부 다 담고 있어서 정말 경악하면서 읽었다. 특히 ‘파괴자’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이라 집중해서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오에의 작품 중에 제일이고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타는 데에-<만엔 원년의 풋볼> 다음으로-한 몫한 작품으로 꼽힌 이유도 알 것 같다. 마르케스처럼 겐자부로도 이야기의 보물을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았구나 싶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이야기’란 것에 갈증이 생기면 다시 들여다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