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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특이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종말까지 지속될 것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았다. 이상적 조건이 갖춰지면 그 항성은 영생하는 천체가 되어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으면서 영영 그대로 머물러 있을 터였다. 그것은 여느 천체와 달리 어떤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이중으로 탈출이 불가능했다. 특이점은 기묘한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내 시간의 양끝에 자리잡았다. 특이점으로부터 가장 먼 과거로 달아나거나 가장 먼 미래로 탈출하더라도 다시 한번 특이점을 마주칠 뿐이었다.- P50
그의 공식에서 예측되는 공허 속에서 우주의 기본 매개변수들은 성질이 뒤바뀌었다. 공간은 시간처럼 흘렀고 시간은 공간처럼 늘어났다. 이 왜곡은 인과 법칙을 바꿨다. 슈바르츠실트는 가상의 여행자가 이 텅 빈 구간을 지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미래로부터 빛과 정보를 받아 아직 일어나지않은 사건들을 볼 수 있으리라고 추론했다. 중력에 찢어발겨지지 않고서 심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여행자는 마치 만화경에서 보듯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자기 머리 위의 작은 원에 한꺼번에 중첩되어 투사되는 것을 볼 것이다. 한 이미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전개되는 우주의 미래 진화를 통째로 인식할 것이며 다른 이미지에서는 과거가 하나의 찰나로 얼어붙은 것을 볼 것이다.- P68
슈바르츠실트에 따르면 질량의 밀도가 가장 높아질 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공간의 형태가 달라진다거나 시간에 기묘한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두려운 것은 특이점이 맹점이며 기본적으로 불가지라는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빛은 특이점에서 결코 탈출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눈은 특이점을 볼 수 없다. 우리의 정신 또한 특이점을 이해할 수 없다. 특이점에서는 일반상대성 법칙이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P70
슈바르츠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정신과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슈바르츠실트는 그런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조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P71
특이점은 어떤 경고도 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돌아올 수 없는 지점, 한번 넘으면 무지막지하게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계에는 어떤 표시도 경계도 없다고. 그 선을 넘는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모든 가능한 궤적이 돌이킬 수 없이 특이점으로 이어지기에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슈바르츠실트가 눈에 핏발이 선 채 물었다. 그 문턱의 성질이 이렇다면 우리가 이미 특이점에 들어섰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P72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그들이 전부 틀렸음을 알고 있었다. 전자는 파동도 입자도 아니었다. 아원자 세계는 그들이 이제껏 알고 있던 그 무엇과도 달랐다. 이것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었다. 확신이 어찌나 깊던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무언가가 그에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어떤 설명도 허락하지 않는 무언가가 하이젠베르크는 사물의 심장에 있는 시커먼 핵을 엿보았다. 이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면 그의 모든 고통은 헛된 것이었을까?- P120
자연의 미시적 측면을 묘사하려면 전혀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P125
"관찰할 수 없는 것! 상상할 수 없는 것! 생각할 수 없는 것!"- P136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니요, 현재 자체다. 한낱 입자 한 개의 상태조차 완벽히 파악할 수 없으니 말이다. 기본 입자를 아무리 꼼꼼히 조사하더라도, 모호하고 미확정적이고 불확실한 것은 언제나 남기 마련이다. 마치 실재가 우리로 하여금 한번에 한쪽 눈으로 세상을 수정처럼 투명하게 인식하는 것은허락하되 양쪽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P218
하이젠베르크가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제 실재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분류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한계를 맞닥뜨렸습니다. 이것은 개입이 탐구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과학이 세상에 비추는 빛은 우리가 바라보는 실재의 모습을 바꿀 뿐 아니라 그 기본적 구성 요소의 행동까지도 바꿉니다." 과학적 방법과 과학의 대상은 더는 분리될 수 없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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