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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창문 거울
  • 윤원화
  • 15,300원 (10%850)
  • 2018-10-22
  • : 425

사진을 출발점에 또 중심에 놓기는 했지만, 이 책의 관심은 사진 고유의 미학을 해명해내는 데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비디오 같은 다른 매체의 소스가 되기도 하고, 건축이나 회화 같은 다른 분과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세계의 기록 또는 허물이 되기도 하고, 그런 것으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벽지나 질료가 되기도 하며, 우리 몸을 감싸고 피부에 각인되는 무늬가 되기도” 하는, 그렇게 “불가피하게 세계를 이미지의 단편들로 부숴 놓지만, 그렇게 단편화된 조각들로 다른 세계를 쌓아올릴 잠재력을 동반”(p.46)하는 무엇, 다시 말해 동시대적인 의미에 잔뜩 절여진 ‘이미지(image)’의 미학을 시도하는 게 이 책의 목표라고 보는 게 낫겠다.


이 무엇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이미지’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것을 저자는 “그림 창문 거울”이라는 3중의 어휘로 겹겹이 싸매어 낸다. 게다가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저자의 관심은 오늘날 우리 주변을 감싸면서 세계 곳곳을 흘러다니는 “그림 창문 거울”이 위치할 수 있는 다양한 맥락들을 종횡무진한다. 결국 책의 선택은 압축보다는 증폭이다. 1차원의 ‘이미지’는 3차원으로 증폭되어 “그림 창문 거울”이 되고, 다시 이것은 세계 곳곳에 침투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이한다. 


그런고로 이 책을 이미지에 대한 ‘생태학(ecology)’이라고 부른다면 꽤나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책은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묻는 건 이미지의 본질이 이미지 아닌 다른 무엇이라는 전제를 이미 깔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대신에 책은 이미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고, 그것의 ‘생활사(life cycle)’를 면밀히 탐구하는 데에 온 힘을 쏟는다. 


오랫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존재의 본질을 ‘말하기’ 혹은 ‘숫자 세기’에 빗대어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이 눈부신 세계를 직시하고, 우리 존재의 일차적 조건이 다름아닌 ‘보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 단, 이 때의 ‘보기’란 언제나 보기 아닌 다른 무언가로 환산되어야 하는 ‘관조하기(theōría)’가 아니며, 그보다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보기’, 즉 ‘눈으로 만지기’ 혹은 ‘빛으로 체험하기’라는 의미에서의 ‘보기’다. 책은 동시대 한국 미술을 “그림 창문 거울”로 삼아 이런 ‘만지기’ 혹은 ‘체험하기’로서의 ‘보기’의 가능성의 영역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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