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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철우님의 서재
  •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 11,520원 (10%640)
  • 2018-10-30
  • : 1,743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어떤 사유도 생기질 않는다. 겨우 겨우 주어지는 것들을 감당하거나 회피하면서 지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책만큼은 끝까지 읽었다. 물론 분량이 작아서, 그나마도 한 권을 읽었다는 성취감을 얻기에 좋은 책이어서 놓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그런데 책을 집어들 때마다 묘하게도 그때의 나랑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신학적으로 성찰한 책이다. 그의 작품 중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를 주로 다룬다. 나는 <죄와 벌>에 대한 해설이 가장 와닿았는데,인간의 모든 이념이나 규범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되려는 욕망을 가진 라스꼴리니꼬프가 이 책 전반의 주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다. 인간이라는 자리에 겸손히 머물려 하기보다는, 그 규범을 파괴하려는 것, 그 제한선을 지워버리려는 것, 그 속에 하나님이 되려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욕망"이 숨어있다. 물론 이 책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쓴 투르나이젠은 하나님이 우리의 규범적 언어로 제한 당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하나님의 현존은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던 어느 때에 갑작스레 임한다. 또 그것을 붙잡으려고 어떤 경건한 행동이나 언어를 도입해보지만, 마치 움켜쥐려하면 사라지는 연기처럼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는다. 투르나이젠의 서술방식도 그래서 하나님께 닿을 듯 말듯 하고, 어떤 개념이나 앎에 닿을 듯 말듯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하나님을 말하기보다 인간을 말한다.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애를 쓰고 강렬히 추구하던 인간이 두손을 다 놓아버리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비쳐온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내는 인간의 드라마는, 인간의 불충분성, 결핍, 제한과 한계를 드러내면서, 인간 존재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표지판이 되도록 한다.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그를 통해 삶을 멋지게 세우고 싶었다. 이런저런 장치들로 내 삶을 꽉 잡아놓으면 더 확고한 인생이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계속 나얀한 내 자신만을 발견하고, 스스로 세워놓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에게 낙담이 되고 실망이 된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하나의 함정이었던 건 아닌지. 하나님의 자리는 없이 내 모든 열심으로 그 자리를 채워보려 했던 건 아닌지.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결정적인 변화를 통해 인간에게 새로운 삶을 강요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이것이 인간이 종교적 도덕적 가능성의 계단에서 온갖 노력을 집중하여 마침내 도달할 수 있게 된 마지막 단계나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시작된 자유의 여정에서의 첫 단계인 것이다. 자유의 여정은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가시화된다. 결정적인 변화는 우리가 발버둥치고 억지를 써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그분의 영원한 능력에서 흘러나온다." (147p)


나는 이 책에서 내 상황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질문을 품고 사는 것, 그 안에서 괴로워 하는 것, 그것을 남김 없이 해소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정해진 답에 나를 맞추어 가는 것보다 더 하나님께 가깝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는다. 결국 내 인생의 마침표가 찍힐 때 그 마지막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이실 것이다. 이 책은 그 단하나의 진리로, 내게 큰 위안을 준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것. 하나님의 궁극성을 말하는 책이다보니 모든게 상대화된다. 당연히 교회도 상대화된다. 경건을 위한 노력도 상대화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걸 다 떠나, 비판적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초월을 향해 홀로 날갯짓하려는 것도 이 책이 경고하는 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려는 시도가 모두 그렇듯이, 교회 바깥에서 마음껏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시도는 인생의 의미를 구성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종말론적인 긴장을 서둘러 미리 제거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 그들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도 기꺼이 괴로운 현실의 짐을 진다. 그들의 기도는 진실하다"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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