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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나무님의 서재
  •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 이소진
  • 15,120원 (10%840)
  • 2023-12-22
  • : 2,538
이 책을 읽으며 거듭 느낀 것은 책 속의 문제가 80-90년대생 여성, 소위 MZ라 불리는 세대 특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 시절의 나는 퇴사 후 재취업을 준비하던 종로의 영어회화반에서 원어민 교사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든 유일한 수강생이었다. 질문은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는가?˝였다. 나는 ˝3번˝이라고 답했다. 3번은 많다와 동의어였다.

지금의 청년 여성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중장년이 되면 다음 세대의 자살 충동을 느끼는 청년 여성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 이건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계급의 문제로구나. 쥐뿔도 없는 계층 안에서 그 안의 약자(딸)를 다시 뜯어먹는 착취의 굴레 같은 거구나. 뜯어낼 물질적 자원이 없을 때, 정신적으로라도 딸들을 밟고 일어나 쥐꼬리만한 자존감을 세우려는 못난 사람들의 흔해 자빠진 이야기로구나.

대대손손, 역사적으로 이런 행태는 반복되어 왔다. 가부장제라는 게 발명된 후에는 딸들이 가장 밑바닥에서 모든 걸 감내하고도 ‘못된 년‘, ‘저밖에 모르는 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왔다. 모든 딸들은 일렉트라가 되라고 리어왕의 세째 딸이 되라고 강압받아온 것이다.

딸들은 착한 아이가 되지 말고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같은 딸들이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도망치고 싶어도 갈 곳이 없던 내 청년 시절은 얼마나 외로웠던가. 도망가봐야 거기도 내 순응과 추종을 취하려는 또다른 가부장제의 화신들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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